이미지 크게보기 그리스 2차 총선이 치러진 25일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가 신민주주의당(신민당) 승리가 확정된 직후 아테네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EPA 연합뉴스

■ Leadership - 2차 총선도 압승 거둔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

1차 총선 돌풍 일으킨 데 이어
신민당 단독정부 구성에 성공

포퓰리즘에 악화일로 걷던 경제
무상의료제 개혁 등 통해 정상화

인재 등용할 땐 능력·소통 우선
성소수자 차관에 여성 입각 확대

도청스캔들·최악 열차참사 등에
추락한 정부 신뢰도 회복은 숙제

잘 빗어 넘긴 머리에 단단하게 죈 넥타이. 키가 190㎝에 육박하지만 마르고 짓궂은 미소 탓에 다부지다기보단 귀공자 같은 외모. ‘정치인보다는 금융인에 가깝다’는 꼬리표를 줄곧 달고 다니던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55) 그리스 총리가 25일(현지시간) 국가 지도자로서 또 한 번 ‘정점’을 찍게 됐다. 지난 5월 1차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데 이어 이날 2차 총선에서도 압승하며 자신이 이끄는 신민주주의당을 다시 단독 집권당 지위에 올려놨기 때문이다.

‘유럽의 문제아’로 국가부도 위기까지 몰렸던 그리스를 정상국가화한 점이 이번 승리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2019년 취임 이후 알렉시스 치프라스 전임 총리가 ‘노 타이’ 차림으로 카리스마를 강조했던 것과는 180도 다른 모습에 ‘코울리스’(미초타키스 총리 이름을 유아식으로 부른 것)라며 놀림을 받았던 그지만, 오히려 그리스에 필요한 ‘개혁의 리더십’이었다는 최종 성적표를 받아든 것이다. 그리스 사상 최악의 열차 충돌 사고, 야당 정치인 및 언론인에 대한 ‘도청 스캔들’ 등 숱한 악재에도 “내가 아니면 혼란(me or chaos)이 올 것”이라 자신했던 미초타키스 총리의 뚝심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리스병 집도한 ‘금융 치료’ 전문가 =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해 그리스 경제성장률은 5.9%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비율은 코로나19 기간 206%까지 치솟았다가 지난해 171%로 대폭 하락했다. 미초타키스 총리 집권 이후 시작된 경제개혁 드라이브가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앞서 그리스는 급진좌파인 시리자당이 집권하던 2015∼2019년을 거치며 국제통화기금(IMF)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까지 촉발한 바 있다. 그리스를 넘어 유로존 전체의 안정을 위협하는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치프라스 정권이 긴축은커녕 최저임금 인상을 서두르고, 대규모 감세와 보조금 지급 등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해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일로를 걸었다. 이후 정권을 잡은 미초타키스 총리는 정부 지출을 억제하며 본격 칼을 빼 들었다. 법인세를 깎아주며 투자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연금과 무상의료제도 개혁, 공기업 민영화 정책 등을 밀어붙였다. ‘친(親)시장’ 기조로 완전히 돌아선 것이다.

이 같은 판단에는 미초타키스 총리가 정치권 입문 전 각종 금융권에서 얻은 현장 경험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테네대를 졸업한 그는 이후 미국 하버드대에서 사회학 학사를, 스탠퍼드대에서 국제정책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했다. 이후 영국 런던 체이스은행, 글로벌 컨설팅업체 매킨지 등에서 일했다. 그렇기에 실물경제와 현실 사회를 잘 안다는 자신감이 충만하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2019년 선거 국면에서 자신이 콘스탄티노스 미초타키스 전 총리의 아들임을 겨냥해 공격하는 치프라스 전 총리에게 “신(新)공산주의식 발언”이라며 “평생 단 하루도 일해본 적 없고, 대학 졸업에 10년이 걸린 이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게 우습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고정관념 깨는 합리적 보수 = 친 시장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우파 보수 정당 대표인 미초타키스 총리지만, 인재 등용에 있어서는 ‘파격’도 불사한다. 2021년 코로나19 사태 속 개각 과정에서 중도 성향의 니콜라스 야트로마놀라키스를 문화부 차관으로 입각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야트로마놀라키스는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을 했던 인물로, 그리스 정부 역사상 동성애자가 장·차관급에 임명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외신들은 당시 이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미초타키스 내각 성향을 고려하면 의외의 인사”라고 전하기도 했다. 알렉스 파텔리스 당시 그리스 총리 수석 경제 고문은 “성 소수자들의 대표성에 대해 역사적인 날이며, 능력주의와 다양성의 큰 승리”라고 평가했다. 그 외 내각 내 여성의 수도 2명에서 4명으로 늘렸다. 그리스 매체 네오스코스모스는 “취임 이후 내각 내 여성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자, 두 배로 늘리기로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간단체의 ‘낙태 반대 포스터’를 철거토록 한 정부의 결정도 주목받는 행보 중 하나다. 그리스에선 1986년 낙태가 합법화됐지만 종교계와 생명권 보호를 주장하는 일부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낙태 반대 주장이 표출돼왔다. 일부 단체들은 신문이나 지하철 역사에 낙태 반대 광고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미초타키스 총리 정부는 이에 2020년 지하철 역사 내 설치된 낙태 반대 광고를 전면 철거하라고 행정 명령을 내렸다. 광고가 국민 여론을 양분시키고, 낙태를 한 여성을 ‘모욕’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세속적 취임식을 치렀던 치프라스 전 총리와 달리 그리스정교회의 아테네 대주교 앞에서 총리 선서로 회귀하며 공식 업무를 시작했던 행보를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해결할 숙제도 산적 = 2차 총선에서 압승하며 단독정부를 구성하게 됐지만, 당장 잔뜩 쌓인 문제들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터진 ‘그리스판 워터게이트’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리스 국가정보국이 야당인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PASOK) 니코스 안드룰라키스 대표를 비롯해 언론인의 휴대전화를 도청했다는 대형 스캔들이다. 안드룰라키스 대표가 법적 대응에 나서며 세상에 알려졌는데, 이로 인해 당시 국가정보국 국장이었던 파나기오티스 콘톨레온이 사임하기도 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몰랐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지만, 정부의 도덕성에 흠집이 났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지난 2월 발생한 그리스 사상 최악의 열차사고에 대한 정부 책임론도 계속되고 있다. 당시 350명을 싣고 아테네에서 테살로니키로 가던 여객열차가 시속 150㎞로 달리다 화물열차와 정면으로 충돌, 57명이 사망한 것이다. 희생자 대부분이 20대 대학생인 것으로 확인되며 공분을 키웠다. 2017년 민영화된 철도회사가 노후화한 철도 안전 시스템을 바꾸지 않았다는 증거들이 속속 나왔고, 시민들은 정부가 방관해 벌어진 참사라며 총리 퇴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왼쪽) 그리스 총리의 어린 시절 모습. 오른쪽은 전 총리를 역임했던 그의 아버지 콘스탄티노스다. 네오스코스모스 캡처

부친도 총리 역임… ‘親시장적 개혁’은 아버지의 정책 기조 이어받아

■ 정치 명문가 출신 미초타키스

증조부는 베니젤로스 총리로
현대 그리스 세운 ‘國父’ 평가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인생의 첫 순간부터 ‘정치’와 함께했다. 미초타키스 가문이 증조부대부터 정치권에 발을 담갔고, 그의 아버지 콘스탄티노스는 전 총리까지 역임한 정치 명문가기 때문이다. 미초타키스 총리의 ‘정치적 멘토’도 지난 2017년 98세의 나이로 영면에 든 그의 아버지다. 그리스 보수파의 거두로, 미초타키스 총리가 추진 중인 친(親)시장적 개혁과 재정 감축 등은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은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콘스탄티노스 전 총리는 1946년 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한 뒤 2004년까지 반세기 넘게 경제부 장관, 외교부 장관, 총리 등 주요 요직을 거쳤다. 총리 재임 시 공기업 민영화, 재정 긴축 등 초기 자유시장 개혁을 진행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노동자들과 야권이 그를 ‘드라큘라’라고 부를 정도로 집요하게 정책을 추진했다고 한다. 그리스가 2010년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리자 “내 정책이 일찍 채택됐으면, 오늘날의 위기를 맞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콘스탄티노스 전 총리는 키리아코스 총리가 태어난 1968년에는 쿠데타로 등장한 군사정권을 피해 프랑스 파리로 망명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키리아코스 총리는 “나는 태어날 때부터 ‘정치범’이었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키리아코스 총리의 이름은 그의 할아버지이자 콘스탄티노스 전 총리 아버지의 이름을 땄다. 할아버지는 그리스 크레타주 하니아현에서 하원의원을 역임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치적 뿌리의 시작은 이보다 더욱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현대 그리스를 세운 국부로 평가받는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가 그의 증조부다.

미초타키스 총리의 누나 도라 바코얀니스(69)도 외교부 장관을 지냈다. 도라는 문화부 장관을 거쳐 여성 최초의 아테네 시장을 지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도라의 아들 코스타스 바코얀니스는 어머니에 이어 2대째 아테네 시장을 지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기득권 집안의 정치 장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