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법안 15건 3년째 계류중
복지부, 출생 통보제 집중하고
보호 출산제 통해서 보완키로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미신고 아동’의 비극이 반복되고 있지만 출생통보제 등 법제화는 수년째 답보하면서 ‘뒷북 대책’ 논란이 거세다. 정부의 부실대응과 의료계의 반발 속에서 관련 법안들은 국회에서 수년째 계류 중인 와중에 후진국형 사태가 잇따라 터져 복지 체계의 허점이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23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에선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부모가 신고할 수 없는 경우 동거 친족, 분만에 관여한 의사와 조산사 등도 신고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부모를 대신해 출생신고를 하기 힘들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이를 막아줄 안전장치가 전무하다는 뜻이다.

이에 영아 살해와 유기 등 범죄가 되풀이되는 건 출생신고가 안 되면 태어난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운 제도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그동안 법적 근거 미비를 이유로 미신고 영유아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유령 아동 사건이 터질 때마다 출생 신고를 강화하는 법안이 쏟아졌지만 국회 문턱을 넘은 사례도 없다. 병원의 출생 통보 의무화 등을 담은 관련 법안 15건은 3년간 국회에 계류돼 있다.

복지부는 유령 아동 사건을 막기 위해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익명출산제)를 빠른 시일 내 도입할 수 있도록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출생통보제는 의료 기관이 직접 아동의 출생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전산 정보 시스템에 등록하는 제도다. 의료계 반발은 변수다. 의료계는 정부 차원에서 출생신고 공백을 없앨 수 있음에도 법적 책임을 민간에 떠넘긴다며 반대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의료 기관에 출생신고 의무를 부과하면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은 산모는 병원 밖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출생통보제가 가져올 사각지대는 보호출산제로 보완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보호출산제는 의료 기관에서 여성이 익명으로 출산한 아동을 국가가 보호하는 제도다. 현재 출생통보제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복지부는 여러 의료기관의 협의가 끝나는 대로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영국과 독일, 미국 등에선 의료기관이나 제3자에게 출생신고 의무를 부여하고 해당국가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의 출생을 등록하는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운영하고 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도 그동안 한국 정부에 이 같은 제도 운영을 수차례 권고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출생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한다고 하면 이제 전산화를 통해 관리해야 한다”며 “병원에서 아이 출생 시 자동으로 등록하고 실제로 출생신고와 주민등록번호까지 매칭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도경·정철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