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침탈이라는 역사적 과오에 대한 일본의 옹졸한 태도가 최근의 일만은 아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징용 해법 결단과 방일 노력을 배신하는 행태는 양국 미래 협력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더욱 개탄스럽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8일 오후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10여 종 검정 결과를 발표하는데, 이들 교과서에는 징용 설명과 관련해 ‘강제적으로 끌려와서’‘징병’ 등의 표현이 삭제됐다고 한다. 독도에 대해서도 ‘일본의 영토’라던 기술을 ‘일본의 고유 영토’로 개악시켰다고 한다. 미래 세대에게 군국주의 치부를 숨기고 미화된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퇴행이다.

이번 교과서는 한일관계가 최악이던 2021년 4월 스가 요시히데 총리 시절의 정부(각의) 지침에 따라 집필된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점을 감안해도 지나치다. 윤 대통령이 16∼17일 방일 때 내놓은 대승적 징용 해법에 대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별도의 언급 없이 “역대 내각의 담화를 전체 계승한다”는 말만 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에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가 나오는데, 기시다 총리는 이번 교과서 개악은 이런 선언 정신조차 짓밟은 것이다.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하야시 요시마사 외상의 최근 국회 답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한국까지 옹졸하게 대응할 수는 없다. 한국의 입장을 당당하고 정확하게 피력하되, 못난 일본을 끌고 간다는 주도적 위치를 견지해야 한다. 일본 교과서가 뭐라고 기술하든 징용의 강제성이 지워지지 않는다. 수많은 역사적 근거가 있고, 생존자들도 있다. 독일은 나치와 단절함으로써 리더 국가가 됐다. 일본도 군국주의 과거를 극복해야 독일처럼 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일본이 잘못된 행태를 보일수록 그만큼 한국이 역사적·도덕적·외교적 우위에 설 수 있다. 일본 교과서 문제는 야당에 좋은 빌미를 제공하고, 윤 대통령에게는 더 큰 국내정치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담대하게 안보·경제 협력을 주도해야 한다. 일본이 졸렬할수록 한국의 의연함이 돋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