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실책은 곧 기회”… 정권교체 기지개 켜는 유럽 제1野대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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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Window - 세지는 ‘정부 견제’…커지는 ‘정치 불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대란, 기후 위기와 자연재해 등으로 유럽 주요국 정상들이 골머리를 앓는 사이 제1야당 대표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오랜 기간 집권에 실패한 이들은 어느 때보다 혼란한 국제 정세 속에서 정부의 실책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민심을 얻고 있다. 영국은 제1야당 노동당이 2020년 키어 스타머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재정비에 성공했고, 내년 총선에서 정권 교체를 노린다. 규모 7.8 대지진이 강타한 튀르키예에선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이탈리아 제1야당 민주당(PD)은 극우 성향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에 맞서 강성 진보를 표방한 엘리 슐라인 대표를 내세웠다. 이처럼 제1야당 대표들의 활약은 정부를 견제하고, 여야의 정책 대결을 견인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지나친 각 세우기와 선명성 경쟁이 정치 안정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치솟는 물가에 노조 파업 등
수낵 총리 곤욕 치르는 사이
7년내 화석연료 전면퇴출 등
英 회생 계획으로 지지 얻어

가디언 “총선까지 시간 많아
방심하면 수낵에게 질 수도”

◇영국 노동당의 부활 꿈꾸는 스타머…내년 총선서 정권 교체 노린다 = 지난달 23일 영국 맨체스터. 각진 안경을 쓰고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스타머 대표가 연단에 오르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는 이 자리에서 내년 12월 총선 공약의 근간이 될 ‘노동당 정부의 5대 목표’를 발표했다.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고, 2030년까지 화석연료를 전부 퇴출하겠다는 등의 청사진을 공개했다. 영국 가디언은 사설을 통해 “망가진 영국을 장기적으로 되살리겠다고 다짐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였다”고 극찬했다. 스타머 대표의 최근 행보는 가히 총리급이다. 지난달 17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나 연대의 뜻을 밝혔고, 이달 초엔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의 코로나19 방역 수칙 위반과 거짓말 의혹을 조사한 수 그레이 전 내각부 고위공무원을 비서실장으로 깜짝 임명했다.

2010년 총선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에 패한 이후 13년째 제1야당에 머물고 있는 노동당은 스타머 대표를 앞세워 내년 총선서 정권 교체를 노리고 있다. 지난달 영국 BBC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은 48%의 지지율을 얻어 집권 보수당(26%)을 20%포인트 이상 앞섰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치솟는 물가와 노동조합의 잇따른 파업, 불법 이민자 강경 대응 등으로 곤욕을 치르는 사이 스타머 대표가 반(反)정부 정서를 전략적으로 공략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가디언은 “수낵 총리는 보수당 역량을 다시 끌어올릴 능력을 충분히 갖춘 사람”이라며 “총선까지 시간이 꽤 남았다. 스타머 대표가 방심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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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술탄’에르도안 대통령
강진에 무능함 드러내며 뭇매
조용하고 간디 닮은 야당대표
20년 독재 끝낼 대항마로 인기

BBC “흡인력·카리스마 부족”
철권통치 종식 불가능 분석도

◇‘튀르키예 간디’ 클르츠다로을루…에르도안 철권통치 끝낼 수 있을까 = 지난 1월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올해 대선을 애초 6월에서 5월 14일로 당겨 치르겠다고 발표할 때만 해도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집권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03년부터 20년째 장기 집권하며 ‘21세기 술탄’으로 불린 에르도안 대통령은 철권통치로 사회 각 분야를 장악했고, 야권은 대항마를 결정하지 못한 채 지리멸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6일 발생한 규모 7.8 강진은 에르도안 대통령에겐 치명타가 됐다.

지진 발생 사흘째인 8일 처음으로 피해 지역을 찾아 “이렇게 큰 재난에 대비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해 뭇매를 맞았고, 구조 작업 지연과 느슨한 건축 규제 등 정부의 무능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기회를 잡은 야권은 지난 6일 74세 노장이자 제1야당 공화인민당의 리더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를 대선 후보로 추대했다.

그는 인도 민족운동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의 외모를 빼닮은 데다가, 조용하고 합의를 중시하는 성격 탓에 ‘튀르키예 간디’로 불린다.

미 블룸버그통신은 “분열된 튀르키예 야권이 대선을 앞두고 힘을 합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에르도안 대통령의 20년 집권을 종식할 최고의 기회를 맞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를 의식한 듯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도 “흩어지면 죽는다. 평화와 형제애의 협치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며 협력을 강조했다.

다만 영국 BBC는 “책 읽기만 즐기고 흡인력과 카리스마는 부족하다”며 에르도안 대통령의 승리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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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니 총리 反이민 정책에 맞서
난민船 사고현장 찾아 유족 위로
최연소·첫 여성·性소수자 출신
페미니스트 리더십으로 새바람

가디언 “총리에 위협적이지만
黨 내부서도 급진적 태도 우려”

◇이탈리아 민주당 첫 여성 대표…멜로니 저격수로 떠오른 슐라인 = 지난달 26일 이탈리아 제1야당 민주당은 슐라인 하원의원을 당 대표로 선출했다. 민주당 역사상 최연소, 첫 여성, 그리고 최초 성소수자 대표라는 타이틀을 모두 거머쥔 그는 수락 연설에서 “이번 승리는 진정한 변화에 대한 분명한 명령”이라며 “우리는 모든 종류의 불평등과 맞서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외신들은 여당 이탈리아형제들(FdI)을 이끄는 멜로니 총리와 슐라인 대표를 비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자라온 환경과 정치 성향, 주요 정책까지 여성이라는 점을 제외하곤 공통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두 인물의 맞대결이 성사됐기 때문이다. 슐라인 대표는 70명의 목숨을 앗아간 난민 선박 난파 사고 현장에 지난 2일 정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찾아가 유족들을 위로했다. 이 자리에서 슐라인 대표는 멜로니 총리의 반이민·반난민 정책을 비판하며 마테오 피안테도시 내무장관의 경질을 요구했다.

양성애자인 슐라인 대표는 여성 정책에서도 멜로니 총리와 각을 세웠다. 그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여성 리더십만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는 페미니스트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동성애와 낙태에 부정적인 견해를 지닌 멜로니 총리를 저격했다. 영국 가디언은 “멜로니 총리에게 슐라인 대표의 존재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그의 급진적인 태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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