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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청년들 - <上> 은둔·저활력의 늪

국무조정실 ‘청년 삶 실태조사’
집에만 2.4%·가끔 외출 11.0%
5년 이상 장기 은둔 비율 6.6%
이유는 취업 실패 때문에 35.0%
가족에게 도움받고 싶어 46.1%

“국가가 전문기관 연결해 줘야”


“10년의 은둔 생활 동안 방 밖으로 몇 번을 나가고 싶었지만 어떻게 나가야 할지를 몰랐어요.”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청년재단 회의실에서 문화일보 취재진과 만난 은둔 경험 청년 송모(36) 씨는 과거 은둔 생활에서 ‘출구 찾기’가 어려웠음을 이처럼 토로했다. 송 씨는 대학 재학 중 학업 스트레스 등으로 자신감이 떨어지며 취업 활동을 멈췄고 오랜 은둔 기간을 경험했다. 그는 청년재단의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은둔 생활에서 빠져나왔지만, 지금도 많은 청년이 사회로 나가길 두려워하고 상당수 부모는 이런 자녀의 상태를 부인하고 있다.

◇은둔·저활력에 빠진 청년들 = 16일 청년재단이 국무조정실의 ‘청년 삶 실태조사’를 상세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사회 참여를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빈도가 떨어지는 은둔·저활력 청년 비중이 13.4%에 달했다. 청년 삶 실태조사는 국무조정실이 지난해 7∼8월 만 19∼34세 남녀 1만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분석 결과 거의 집에만 있는 ‘은둔형’ 청년의 비율은 2.4%였으며, 은둔형 외에도 가끔 외출하는 ‘저활력’ 청년의 비율 또한 11.0%에 달했다. 특히 은둔형 중에서는 ‘취미만 위해 외출’하는 청년이 1.3%였고, 인근 편의점을 방문할 때만 외출하는 청년도 1.0% 등 외부와 단절이 심각했다. 소수이지만 ‘방에서 나오는 것’(0.1%)을 외출로 여기는 청년도 있었다. 은둔형 청년들의 은둔 지속 기간을 보면 6개월 미만인 비율이 34.6%였지만, 1년 이상∼3년 미만인 비율도 31.5%, 5년 이상 장기 은둔의 비율도 6.6%였다. 은둔 생활의 주요 원인으로 ‘취업의 어려움’을 선택한 비율이 35.0%로 가장 높았고, 이어 ‘대인관계 어려움’과 ‘학업 중단’이 각각 10.0%, 7.9%로 나타났다.

◇가족이 외면하면 더 숨는 청년들 = 청년실태 조사에 따르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고 싶은 집단’으로 가족을 꼽은 이가 46.1%로 가장 많았다. 공공기관이 28.0%, 지인이 20.5%로 뒤를 이었다. 가족과 대화를 통해 은둔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장기화하는 경향이 크다. 청년재단 회의실에서 만난 김모(여·31) 씨는 “가정폭력을 당해 우울증이 생겼고 10년간 은둔 생활을 했다”며 “은둔 생활을 가족에게도 말을 못 하면서 더 의지할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은둔 생활을 경험한 이들은 부모들이 자녀의 은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 이로 인해 조기에 사회로 나오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부모들은 지역사회에서 자녀의 은둔 소문이 퍼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숨기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1년 미만의 은둔 경험이 있는 송모(26) 씨는 가족과 상담을 통해 조기에 공공·공익기관을 찾은 사례다. 그는 “누나에게 이야기해 청년재단 프로그램을 신청했고, 참여 프로그램에서 내 생활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은 “은둔·저활력의 원인이 다양한데 국가가 이를 유형화해 이들을 전문기관과 연결해 줄 필요가 있다”며 “은둔·저활력을 개인 문제로 치부하기보다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 ‘위기 상황’ 진단·대처법

불면·의욕저하·우울감 2주 이상 땐 가족과 우선 소통

청년들이 우울감 등의 증상을 2주 이상 경험하고 있다면 주변의 관심과 지원을 통해 은둔 단계로 이행하지 않을 수 있는 예방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둔 청년은 일반적으로 수개월 이상 사회 참여를 하지 않을 때로 정의하고 있지만, 은둔에 빠지기 전에 사회적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16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은둔 청년들은 보통 우울증이 찾아온다. 2주 이상 비슷한 증상들이 계속되면 우울증으로 진단된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하거나, 의욕이 저하되거나, 식욕을 잃는 등의 상태가 나타난다. 주변에서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도움을 주는 게 좋다. 은둔 단계로 이행해도 은둔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주변의 관심이 계속돼야 한다. 초기 단계에 있는 은둔 청년은 일반적으로 3개월에서 6개월 이상 가족 이외 사람과는 소통하지 않는다. 이때 가족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고, 학교 등에서 교사 등의 대응도 중요하다. 마지막 단계에선 정부의 지원도 필수다.

은둔 청년은 가족과 소통을 끊기도 하지만, 가정은 이들이 그나마 안심하는 거처다. 가족이 은둔 청년과의 소통을 계속 시도해야 한다. 등교 거부는 은둔의 대표적인 증상인데, 이때 교사의 대응 또한 중요하다. 교사는 우울감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학생의 변화를 잘 관찰하고, 실제 은둔이 시작되기 전에 지나치게 티를 내지 않는 수준에서 학생에게 관심을 주는 게 좋다. 은둔이 본격화된 ‘은둔형 외톨이 단계’까지 왔다면, 복귀를 강요하지 말되 지속적인 관심으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 마지막 단계에선 정부 기관 등의 전문적 역할이 필요하다. 각 지방자치단체나 국가에서 운영하는 심리상담센터 등이 도움을 줄 수 있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