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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한국은행이 지난 23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행 연 3.50%로 동결했다. 2021년 8월에 0.50%에서 0.75%로 올리기 시작한 이후 10차례 만에 동결한 것이다. 금통위는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겠지만, 목표 수준을 넘는 물가 오름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불확실성도 높은 만큼 물가 안정을 위해 긴축 기조를 이어가면서 추가 인상 필요성을 판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은 총재는 안개가 가득할 때는 잠시 차를 세워야 한다면서 금리 인상 기조가 끝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지금의 불황은 미국이 2001년부터 저금리 정책으로 돈을 풀어 금융위기를 촉발하고 이후에도 주요국이 돈을 푼 데다, 코로나19 사태로 또 돈을 풀어 경제를 망가뜨린 결과다. 금융위기 때처럼 대부시장을 통해 풀린 돈을 손에 쥔 기업가들은 자본재 산업에 투자하지만, 이런 투자는 생산해 소비하고 남은 (실물) 저축이 아니라 단지 인쇄한 지폐로 이뤄진 것이므로 사상누각이다. 불황이 자본재 산업에서 시작되는 이유다. 반면에 소비재 생산은 줄어들고 소비자들의 화폐소득은 늘어 물가는 올라간다.

다음으로, 코로나19 사태 때처럼 풀린 돈을 소비자들이 손에 쥐면 소비재 수요가 늘고 생산요소들이 자본재 산업에서 소비재 산업으로 이동함에 따라 공급 구조가 망가져 물가가 오른다. 이에 더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 체인에 타격을 가한 것이 현 경제 상황이다. 전쟁이 일시적 요인이라면 경제에 쌓여 있는 돈 쓰레기(?)는 구조적 원인이며, 금리 인상은 이를 청소하는 일이다.

금리 인상을 두고 흔히 하는 착각은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 인상을 멈추거나 끝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경기 침체는 돈 쓰레기를 치워야 물러간다. 지금 경제는 오리무중이 아니라, 고통을 수반하는 불황 상태에 있다. 돈 쓰레기를 확실히 정리해야 안개가 걷히고 안전 운전을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돈을 푸는 정책에는 박수를 치고 거둬들이는 정책에는 불만을 드러내지만, 돈을 푼 결과가 지금의 불황이다. 그런데 불황은 망가진 생산구조가 사람들이 원하는 소비구조와 다시 맞춰져 시장 기능이 복구되고 재정비되는 기간이다. 당연히 정부 간섭은 금물이다. 그런데도 지난해에 노벨상위원회는 돈을 왕창 풀어 불을 질러 놓고, ‘불이야’를 외친 방화범 벤 버냉키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수여했다.(마크 손턴)

금리 인상 효과를 무력화하는 최근의 일은, 은행들이 이자 장사로 번 돈으로 잔치를 벌인다며 금융 규제 당국이 금리 인하를 강요한 것이다. 그런데 금융 소비자들을 가장 잘 만족시키는 시장은, 정부 규제가 없고 진입과 퇴출이 자유로울 때 치열한 경쟁의 결과로 형성된다. 과점이든 뭐든 경쟁자의 수와 경쟁 강도는 무관하다. 더 우스꽝스러운 것은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올리는데 시중금리는 낮게 규제하는 엇박자다. 그런데도 한국은행은 한마디 말이 없다.

붐, 거품 붕괴, 불황을 반복하는 경기순환은 중앙은행이 정책적으로 공급량을 결정하는 명령화폐(fiat money) 제도에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금본위제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연간 통화증가율을 정하고 엄격히 지키도록 하는 것이 그나마 경기순환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