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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범 경제부 부장

법조계는 ‘몸통’을 밝히지 못한 채 ‘깃털’만 손댄 수사에 대해 ‘용두사미 수사’라 부른다. 취재하면서 “언론이 용 머리를 멋대로 그려 놓고 이제 와 용두사미 수사를 했다고 지적한다”며 항변하는 수사 책임자를 만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의혹 한 점도 남기지 않고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할 수사 책임자답지 않은 궁색한 변명으로 들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 산업 과점의 폐해가 큰 만큼 실질적인 경쟁 시스템을 마련하라”며 특단의 대책 마련을 주문한 것을 두고 경제계의 반응은 온도 차가 크다. 서민경제의 금리 고통을 외면한 채 과도한 이자 장사와 돈 잔치로 위화감을 조성한 은행권을 질타하고 과점 체제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지적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반면, 금융 당국과 은행권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을 만나면 특단의 대책 요구도 ‘용두사미’처럼 흐지부지되지 않겠느냐는 회의적 시각이 상당하다.

이들이 첫 번째로 꼽는 근거는 은행 하나가 무너지면 파장은 기업 하나가 무너지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금과 대출, 신용 등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혈관을 타고 국민과 기업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아, 자칫 전체 시스템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은행이 줄줄이 도산하고 공적 자금이 투입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계기로 관련 시장이 5대 시중은행이 주도하는 과점 체제로 재편됐다. 두 번째 근거는 경험적으로 확인한 정책적 한계다. 정부가 경쟁을 촉진하고 혁신을 북돋기 위해 2015년 계좌이동제를 도입하고 이후 인터넷은행 3곳을 인가해 줬으나 과점 체제는 요지부동이다. 정부가 새롭게 영국의 ‘챌린저뱅크’ 모델을 도입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으나, 이 역시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진 못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영국이 핀테크 기반의 특화 은행인 챌린저뱅크 인가를 30여 곳에 내줬으나 기존 금융 시장을 보완하는 역할에 머문다는 평가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경제학자들은 좋은 의도에서 출발한 정책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는 경우를 빗대 이처럼 경고한다. 선의에서 출발했다는 이번 개혁이 구호만으론 성공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전문가들 우려대로 기존 문법과 틀에 박힌 사고를 반복하면 이번 시도 역시 실패하고 말 것이다. 정부는 과연 애플과 같은 초거대 기업이 ‘애플 은행’을 만들겠다면 오랫동안 교조적으로 지켜온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규제를 풀고 허용할 각오가 돼 있는가. 막강한 자본력과 경영 능력을 지닌 경쟁자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으면 그럴싸하게 포장된 어떤 경쟁 촉진 방안도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수밖에 없다. 세상과 실물경제는 급변했는데, 금융 당국과 금융산업은 IMF 사태 직후 만든 수십여 년 전의 낡은 금융 제도와 시스템에 안주한 채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물론 금융지주사제도를 도입하긴 했으나 포장지만 달라졌다는 평가도 만만찮다. 이자 장사와 돈 잔치 논란을 불러온 고금리 고통은 새로운 질서로 자리 잡는 고물가 현상과 함께 장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금융개혁이 누군가의 ‘공명심’을 위한 용도로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