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미케일라 시프린. AP 뉴시스

알파인스키의 살아있는 전설들
시프린·스텐마르크는 ‘회전계’
본은 ‘속도계’, 마이어는 ‘신계’
시프린, 월드컵 첫 100승 예약


미케일라 시프린 (28)이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알파인스키 여자부 최다우승을 경신했다. 시프린은 지난 24일(한국시간) 이탈리아 크론플라츠에서 열린 여자대회전에서 정상에 올라 개인 통산 83승째를 거뒀고, 린지 본(39·미국)의 82승을 추월했다. 그렇다면 ‘스키여제’란 칭호는 이제 시프린에게 돌아가는 것일까.

세부종목을 따지면 누가 더 뛰어나느냐를 가리기란 어렵다. 알파인스키는 기술, 속도 종목으로 나뉜다. 기술 종목은 대회전과 회전, 평행회전. 속도 종목은 활강과 슈퍼대회전이다. 복합은 기술과 속도를 합한 개념으로 속도와 기술, 두 종목의 성적을 합산해 순위를 정한다.

시프린은 기술, 본은 속도가 주종목이다. 월드컵 시리즈 세부종목 승수를 비교해보면 차이는 금세 드러난다. 시프린은 회전에서 51승, 대회전에서 18승, 슈퍼대회전에서 5승, 평행회전에서 5승, 활강에서 3승, 복합에서 1승을 올렸다. 회전과 대회전을 합하면 83승 중 83.1%인 69승이다. 본은 활강에서 43승, 슈퍼대회전에서 28승, 대회전에서 4승, 회전에서 2승, 복합에서 5승을 거뒀다. 활강과 슈퍼대회전을 합하면 82승 중 86.6%인 71승이다.

시프린은 기술계, 본은 속도계의 1인자. 그래서 시프린은 큰 부상을 겪지 않고 꾸준하게 정상을 정복한 반면, 본은 5차례나 수술대에 오르면서 공백과 복귀를 거듭했다. 본의 골격은 성한 데가 없고 부상 후유증 탓에 2019년 은퇴했다.

월드컵 남녀 통틀어 최다우승자는 잉에마르 스텐마르크(67·스웨덴)로 86승이다. 스텐마르크는 대회전에서 46승, 회전에서 40승을 거뒀다. 기술종목이 100%다.

이미지 크게보기 잉에마르 스텐마르크(왼쪽)과 린지 본. AP 뉴시스

반면 헤르만 마이어(51·오스트리아)는 기술계와 속도계를 넘나들었고, 그래서 ‘스키의 신’에 비유된다. 마이어는 월드컵 통산 54승을 거뒀는데 슈퍼대회전 24승, 활강 15승, 대회전 14승, 복합 1승이다.

마이어는 1998 나가노동계올림픽에서 의미 있는 흔적을 남겼다. 대회전과 슈퍼대회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특히 엄청난 불운을 극복한 한 편의 드라마였다. 마이어는 활강 우승후보 1순위였지만 레이스 도중 균형을 잃었다. 마이어는 시속 140㎞ 이상으로 질주했다. 균형을 잃은 마이어는 빠른 속도 탓에 허공으로 수십m 날아갔다. 머리가 가장 먼저 설원과 충돌했고, 떨어진 뒤에도 30m 정도 굴렀고 몸은 여러 차례 뒤집혔다. 심각한 부상이 우려됐지만 마이어는 활강 사고 3일 뒤 대회전에서 우승하는 기적을 연출했고 슈퍼대회전까지 석권했다. 마이어는 여러 차례 대형 부상에 시달렸지만, 오뚝이처럼 일어났고 그래서 ‘헤르미네이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헤르만과 터미네이터를 조합한 닉네임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헤르만 마이어. FIS 제공

스텐마르크, 마이어, 본은 활약한 시기가 달랐지만 스키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슈퍼스타들이다. 모두 은퇴했고 이제 시프린이 스키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시프린은 월드컵 역대 최다우승 기록 작성, 그리고 사상 첫 100승 돌파까지도 예약했다.

이준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