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개혁, 선관위에 설계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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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前 경희대 교수·정치학

실학자 성호 이익(李瀷)은 ‘성호잡저(星湖雜著)’ 첫머리에서 ‘결점 없는 사람은 있어도 폐단 없는 정사(政事)는 없다’고 단언했다. 성인이 만든 완벽한 제도조차도 시세의 변화로 결점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처음부터 불완전했던 제도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개혁은 늘 필요하다는 게 이익의 주장이다. 우리가 사회 전반에서 거의 일상적으로 개혁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한 언론사 신년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한 데 이어 때마침 김진표 국회의장도 내년 4월 10일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 획정 법정시한인 오는 4월 10일까지 선거제도 개편을 이뤄 내겠다면서 국회의원 선거제 개편이 정치권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여야 의원 70여 명이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을 꾸리는 등 선거제 개혁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35년간 유지해온 소선거구제는 사표(死票)를 양산하고 작은 정당의 원내 진입을 어렵게 해 거대 양당의 지배를 강화하고 지역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 때문에 중대선거구제는 소선거구제의 폐단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자주 거론돼 왔다.

하지만 지금 거론되는 중대선구제(2∼5인 선거구제)가 그 자체로 소선구제의 문제점들을 일거에 해소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유신시대에 봤듯이 2인 선거구제는 여야 거대 정당의 지배력을 오히려 강화시킬 수도 있다. 대선거구제도 그 자체로는 거대 양당의 지배를 약화시키지 못한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대선거구제를 시범 시행한 기초의원 선거구 30곳에서 당선된 109명 가운데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당선자가 105명으로 96.3%나 되고 소수 정당 소속 당선인은 4명에 불과했다.

진정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하려면 다음 두 가지가 필요하다.

먼저, 고양이(국회)에게 생선(선거제)을 맡길 게 아니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맡겨 이상적 선거제도를 설계하게 하는 일이다. 선관위는 오랫동안 각국의 선거제도를 비교 분석해 왔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이를 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특히 참고할 만한 것이 브라질의 하원의원 선거제도다.

브라질의 경우 각 주의 인구에 따라 의석수를 나누고 각 정당은 이 숫자까지 후보를 낸다. 각 정당 후보들의 득표수에 비례해 당의 의석수가 결정되면 정당 내의 당선자는 득표순으로 결정한다. 후보의 순위를 정당이 미리 매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럽의 정당명부제와 차이가 있다. 당락이 개인의 득표력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예선과 본선을 결합한 효과가 나고 중앙당의 지배력은 약해진다. 문제일 수도 있지만, 당론에 따른 무한대립이 문제가 되는 우리나라에서는 당내 민주주의와 정당 간 타협을 증진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다음으로, 라틴어 금언처럼 ‘천천히 서둘러’야 한다. 아무리 좋은 개혁안이 나와도 최종 결정은 국회가 한다. 당장 다음 선거부터 적용한다면 각 의원과 정당은 이해득실을 따질 수밖에 없고 설계도는 누더기가 될 것이다. 8년이나 12년의 유예기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을 쳐서 손익을 계산하기 어렵게 만들어야 조금은 더 공익을 고려하게 될 것이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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