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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를 반죽하고 발효시켜 오븐에 구워내는 빵은 밀가루, 오븐, 갈색이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런 음식은 모두 빵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려 지지만 바게트, 크루아상, 카스텔라처럼 고유한 이름이 붙은 것도 있다. 이 중 카스텔라는 ‘카스테라’라는 일본식 발음으로 부르는 사람이 더 많은데, 거슬러 올라가면 ‘가수저라(加須底羅)’에 이르게 되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빵을 서양의 떡으로 부른 ‘서양병(西洋餠)’에 다다르게 된다.

18세기 초의 선비 이기지는 연행사로 청나라 연경을 방문했다가 가톨릭 성당의 예수회 신부들로부터 기이한 떡을 대접받았다. 밀가루, 설탕, 달걀로 만들었다는데 입에 넣자마자 살살 녹는 천국의 맛이었다. 재료와 비법을 적은 뒤 귀국해서 이 서양병을 만들어 보려 하지만 결국은 실패한다. 가수저라 혹은 서양병이 일찍이 우리 땅에 뿌리를 내릴 기회를 잃은 것이다.

이와 달리 일본에는 이미 16세기 중반에 포르투갈 상인들로부터 이 빵이 직접 전해졌다. 이후 재료와 조리법을 변형시켜 오늘날에는 카스텔라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카스텔라를 일본 과자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 카스텔라가 얼마나 맛있었던지 늦은 시기에 통신사로 일본을 방문한 이들은 이전의 통신사들의 상에 올랐던 카스텔라가 왜 없냐고 따지는 일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단팥빵, 식빵을 포함해 빵의 역사에서는 우리가 일본에 빚진 것이 꽤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름은 어떠한가? 굳이 한자로 적은 가수저라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남은 것은 본토의 발음에 가까운 ‘카스텔라’와 일본을 거치면서 이름이 변형된 ‘카스테라’이다. 나이가 좀 든 세대는 카스테라를 더 익숙하게 여기고 세대 전체를 통틀어도 아직은 카스테라가 우위인 듯하다. 그러나 본토 발음에 익숙한 이들의 수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카스텔라가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맛도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