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십자가의 길’ 중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다는 골고다 언덕 지점에 제단이 설치돼 있다.

■ 이스라엘 성지에서 성탄의 뜻을 찾다 - <下> 예루살렘

유대인 슬픔 새겨진 ‘통곡의 벽’
성전 파괴 때 성도들이 울던 곳
거대 벽 앞 기도하는 군중 ‘장관’

골고다 언덕행 ‘비아 돌로로사’
예수처럼 십자가 메고 걷거나
성경 읽으며 오르는 순례자 많아

예수 사흘간 묻혔던 ‘무덤교회’
십자가 달린 골고다 언덕 등 5곳
“올때마다 고통 느껴져 절로 눈물”

예루살렘 = 글 · 사진 장재선 선임기자

이스라엘 예루살렘은 평화의 마을이라는 뜻을 지녔다. 히브리어로 ‘예루(터, 기초)’와 ‘살렘(평강)’의 합성어이다. 그런데 이곳은 평화보다는 갈등의 역사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모두 성지로 여기며 충돌을 해 온 탓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인간의 원죄를 대속하고 사랑을 실천한 곳이다. 이스라엘을 건국한 유대인들은 기원전 1000년경에 다윗이 점령해 이름 짓고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때부터 자신들의 성소였다고 주장한다. 무슬림들은 이곳이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승천한 곳이라고 믿는다.

오늘날의 예루살렘은 올드시티(구도시)와 뉴시티(신도시)로 나뉘어 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예루살렘 입성은 올드시티로 들어가는 것이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올드시티 출입문은 8개가 있다. 7세기에 아랍인들에 의해 막힌 황금문을 제외하곤 지금도 모두 쓰고 있다.

이 중 ‘분문(糞門·Dung gate)’을 통과해 성으로 들어갔다. 성내의 오물을 버리는 문이라는 뜻의 분문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유명한 ‘통곡의 벽’과 가장 가까운 문이다.

통곡의 벽은 성전산을 둘러싼 450m가량의 서쪽 외벽을 말한다. 성경에서 아브라함, 다윗, 솔로몬의 일화가 전해지는 모리아산이 바로 성전산이다. 디아스포라(Diaspora)로 세계를 떠돌았던 유대인들이 이곳에서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것과 나라를 잃은 처지를 슬퍼하며 울었다고 해서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통곡의 벽’에서 랍비 복장을 하거나 유대 전통 모자를 쓴 남성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곳에 간 날이 유대교의 안식일이 시작하는 금요일이어서 기도하기 위해 몰려든 유대인들이 많았다. 랍비 복장을 하거나 조그만 모자인 카파를 쓴 남성들이 벽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남녀 기도 장소가 나뉘어 있는데, 남성은 왼쪽, 여성은 오른쪽에서 묵상하고 기도를 했다. 거대한 벽 앞에서 군중이 기도를 올리는 모습은 예상대로 장관이었다. 조상들이 남겨 놓은 성벽의 한 귀퉁이를 붙들고 눈을 감고 있는 유대인들의 모습이 너무도 절실해 보였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며 성지 순례 가이드를 하는 이영란 씨는 “유대인들이 애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기독교인을 비롯한 다른 종교인들도 신심을 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예루살렘 성지 순례객들이 십자가를 메고 성경을 봉독하며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다.

성지 순례 코스에서 가장 유명한 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를 찾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오른 길로, 우리말로는 ‘십자가의 길’이라 이른다. 고고학적 고증이 어려워 시대마다 조금씩 달랐으나, 현재의 길은 19세기에 확정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가 빌라도에게 사형 언도를 받은 1지점부터 무덤에 묻힌 14지점까지가 순례 코스이다. 지점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경건한 표정으로 걷고 있었는데,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메고 성경을 읽으며 순례하는 이들도 보였다. 성화(聖畵)에서 보는 예수처럼 하얀 옷을 걸치고 머리를 기른 미국인 제임스 조지프 씨는 맨발로 걸으며 예수의 고난을 새긴다고 했다. 그는 “예루살렘에 머물며 14년째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다”며 “이 길을 걸을 때마다 그리스도의 메시지인 ‘서로 사랑하라’를 묵상한다”고 했다.

길의 끝부분에 ‘예수무덤교회(성모교회)’가 있다. 로마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 황후가 세운 이 교회는 비아 돌로로사의 10∼14지점을 품고 있다. 로마 병사들이 예수의 옷을 벗긴 곳(10지점), 십자가를 눕혀 놓고 예수를 못 박은 곳(11지점), 십자가에 매달린 골고다 언덕(12지점)이 있다. 예수의 시체를 어머니 마리아가 껴안은 곳이 13지점이다. 거기 가기 전 벽면에 당시 상황을 그려 놓은 그림이 있는데, 마리아의 가슴에 쇠못이 박혀 있어서 이채로웠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아픔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순례에 동행한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는 “여기 올 때마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예수님이 겪은 고통을 절실히 느끼게 돼 눈물이 절로 난다”고 했다.

그리스도가 사흘간 묻혀 있었다는 무덤 장소(14지점)에 들어가기 위해선 줄을 서야 했다. 순례객들이 많아서였다. 작은 문으로 들어서서 만난 제단 앞에서 절로 손을 모았다. 그리스도가 피를 흘리며 세상에 전한 사랑의 메시지에 깊이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