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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카페 - 김헌 · 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21) 월드컵, 언더독의 반전

신약성서 ‘누가복음’

주변부 로마, 제국으로 성장
그 아래 수많은 언더독 생겨

베들레헴서 믿음 씨앗 싹 터
그 믿음은 로마 집어삼키고
세상 사람들의 정신 지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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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축제, 월드컵 대회가 오늘 새벽에 끝났다. 최종 승자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는 눈부신 이변이 속출했다. 사우디가 아르헨티나를, 일본이 독일과 스페인을 이겼고, 우리는 포르투갈을 격파하고 우루과이를 좌절시키며 16강에 진출했으며, 모로코가 아프리카 국가로는 최초로 4강에 진출했다. ‘언더독(underdog)의 반란’이었다. 전 세계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속에 승부욕의 불을 지폈다. ‘그래, 나도 할 수 있어! 미리 겁먹고 쫄 필요는 없지. 일단 해보자!’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유쾌한 근거를 제공했다. 모두가 정상을 노리지만 대부분 경쟁의 과정에서 미끄러지고, 꼭대기엔 언제나 소수의 ‘넘사벽’들이 버티고 있는 피라미드 같은 세상, 그러나 이번 월드컵 대회는 반전의 기회는 언제나 열려 있다는 눈부신 희망을 보여주었다.

따지고 보면 인간사가 다 그런 것 같다. 인류의 역사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 승승장구하며 정상에 섰던 개인과 집단은 그들이 무시하고 짓밟았던 ‘밑에 있던 개’들에게 물려 힘을 잃고 말았다. 역사란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라고 하는데, 역사가 언더독과 오버독(overdog)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인류 역사에서 최대의 ‘언더독 반란’은 무엇일까?

서양 역사에서 유일하게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mare nostrum)’라고 부른 나라는 로마제국이 유일하다. 그런데 로마제국도 언더독의 반란으로 세워졌다.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난 로물루스가 세운 로마는 인구 10만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나라였다. 이탈리아 반도 중부의 작은 고을에 불과했던 로마는 주변의 강력한 나라들을 정복한 뒤, 지중해 동쪽의 그리스와 서쪽의 카르타고를 제압하고 날개를 활짝 펴며 지중해 전체를 둘러싸는 거대한 제국으로 우뚝 선 것이다. 가히 지중해 세계의 가장 대표적인 언더독 반란의 사례라 할 만하다.

로마제국을 세우고 최초의 황제로 등극한 아우구스투스가 ‘지상의 유피테르(제우스)’로 군림하며 위세를 만천하에 떨쳤을 때, 로마 밑으로 수많은 언더독이 새롭게 생겼다. 바로 그 무렵,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언더독의 반란이 싹텄다. 로마제국의 한 식민지 이스라엘의 아주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부모의 신분은 보잘것없었다. 아버지는 목수였는데, 사실 그의 아내가 낳은 아이는 그의 아들이 아니었다. 신비로운 ‘혼외자’였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사람들을 구할 메시아가 되리라는 ‘터무니없는’ 소문이 나도는 바람에, 그의 또래들은 아무 잘못도 없이 갓난아이 상태로 학살을 당해야 했다. 그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는 민족의 구원자로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로마가 지상에 거대한 제국을 세우며 확장해 나갈 때, 그가 설 땅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는 지상이 아닌 하늘에 왕국을 세운다는 ‘황당한’ 선언을 할 뿐이었다. 그것이 로마제국에 대한 반란이 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 정신승리적인 반란도 성공하지 못했다. 무력하게 체포된 그는 십자가에 매달려 잔혹하게 처형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짓밟힌 언더독의 위대한 반란이 시작되는 진격의 서막이었다. 그는 죽음을 이겨내고 부활했고, 그가 세우기로 약속한 하늘나라로 승천했으며, 언젠가는 다시 내려와 천하의 왕으로서 세상을 심판한다는 소문이 로마제국의 구석구석, 사람들 사이사이로 퍼져나갔다.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나 그의 가르침에 따라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선한 사람들만이 그의 왕국, 하늘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끝내 로마제국을 집어삼켰다. 로마가 그 믿음을 국교로 선포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믿음은 세상의 수많은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매년 그는 세상에 상처받고 아파하는 수많은 언더독의 마음을 위로하는 희망으로서 우리 곁으로 온다. 누가는 이렇게 기록했다. “하늘엔 신께 영광이요, 땅 위에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그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안이 될 만큼 세상은 언제나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