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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살고 있는 아홉 살 사내애가 냉면을 끔찍하게 싫어한단다. 이유는 냉면의 맛 때문이 아니라 ‘冷面’이라는 단어의 뜻 때문이란다. 냉면은 본래 차갑게 먹는 국수란 뜻인데 이 아이는 ‘식은 국수’로 받아들인단다. 지극정성인 엄마 덕분에 늘 ‘따순밥’만을 먹어 온 아이이니 식은 음식은 곧 못 먹을 음식이다.

얼음같이 차가운 맥주를 찾는 한국인들을 보면 중국인들은 의아해한다. 우리는 ‘미지근한 맥주’라며 끔찍하게 싫어하는 맥주를 중국인들은 ‘상온 맥주’라며 당연시하며 마신다. 한겨울에도 냉장고에서 꺼낸 물을 마시는 한국인들이니 찬 것에 대한 선호는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뚝배기나 돌솥에 담겨 식탁 위에서까지 펄펄 끓고 있는 탕을 즐기는 것,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시원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음식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각이 의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밥’에 대해서는 단호하다. 음식으로서의 찬밥도 싫어하지만 음식에서 유래해 뜻이 더해진 ‘찬밥’ 신세가 되는 것 또한 도저히 견디지 못한다. 음식은 차갑게 먹어야 할 것과 따뜻하게 먹어야 할 것이 나뉘지만 따뜻한 음식은 갓 요리해 낸 음식과 동일시된다. 반면에 차가운 음식은 만든 지 오래된 음식, 혹은 남은 음식일 가능성이 크다. 밥 또한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것을 솥에서 바로 퍼서 먹는 게 가장 맛있다.

평안도식 음식점에는 ‘온반(溫飯)’이 있는데 단어의 뜻만 보면 ‘따뜻한 밥’이다. 밥은 당연히 따뜻해야 하니 이것이 식당의 메뉴가 될까 싶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국밥이라고 부를 만한 음식이다. 따뜻한 밥을 따뜻한 국물에 말고 고명을 얹어 내는 음식이다. 여름의 냉면에 필적할 만한 평안도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추운 계절에는 따뜻한 밥을 먹어야 한다. 주변에 ‘찬밥’ 취급을 받는 이들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