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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문화부장

한 해가 저물어 가면서 각 분야에서 올해의 키워드, 올해의 단어를 내놓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선정한 ‘단어(트렌드)’를 한자리에 모아 놓고 보면 올 한 해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먼저, 전국 대학교수들은 올 한 해 한국 사회를 표현한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꼽았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의 이 사자성어를 선정한 것은 한국 지도층이 보여주는 무책임한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라이프 스타일 쪽에서 보면 인스타그램이 올해 트렌드로 꼽은 ‘갓(GOD)생’이 있다. ‘갓생’은 누가 뭐라든 제 방식대로 오늘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려는 태도다. ‘인생을 마음껏 즐기자’는 ‘욜로’와 달리 자기 계발에 힘쓰고, 그러면서도 큰 성공보다 자기만의 행복을 찾는다는 점에선 소확행과도 닮았다. 사회적 이슈에선 구글코리아가 꼽은 올해의 트렌드가 떠오른다. 바로 ‘기후변화’다. 기후변화는 올해 최대 화제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제치고 검색 1위를 차지했다. 여기에 더해 올해의 명언이라면 ‘2022 카타르월드컵’ 응원 문구였던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를 빼놓을 수 없다.

문화 쪽에서 본 올해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K-팝부터 K-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숱한 키워드가 쏟아졌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을 꼽자면 교보문고가 내놓은 ‘낭중지추(囊中之錐)’이다. 주머니 속의 송곳을 뜻하는 낭중지추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아무리 숨어도 저절로 알려짐을 말한다. 교보문고가 낭중지추를 꼽은 것은 도서 시장에서도 확인된 ‘K-콘텐츠’의 위력 때문이다.

K-팝, 드라마, 영화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뜨겁지만 한국 문학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높아졌다. 지난봄 소설가 손원평의 ‘서른의 반격’이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을 수상했고, 정보라 작가는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여름엔, 이수지 작가가 최고 권위의 안데르센상을 받았고, 이번 겨울, 이정명 작가의 장편 소설 ‘부서진 여름’은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스릴러’에 올랐다. 한편, 상반기 애플TV+의 ‘파친코’가 흥행하면서 원작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됐고, 박찬욱 감독에게 칸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준 영화 ‘헤어질 결심’의 각본집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이렇게 ‘K-콘텐츠’ 위력은 낭중지추라는 단어처럼 콘텐츠 영역을 넘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지난해의 ‘오징어 게임’만큼 강렬한 히트작이 없는 것 같지만, 넷플릭스부터 디즈니+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OTT는 한국 콘텐츠를 글로벌 흥행의 지렛대로 삼고, K-팝은 각종 차트를 휩쓰는 등 K-콘텐츠 인기는 이제 ‘문화적 기본값’이 됐다. K-콘텐츠의 인기는 문화의 전 영역을 넘어 라이프 스타일, 삶의 방식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가치를 전하고, 취향을 결정하고, 미의식을 만드는 것이다. 변방에서 주류로 들어갈수록 높은 책임감이 필요한 법이다. 그저 재미만으로는 그 자리를 지킬 수 없다.

2022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제 K-콘텐츠가 글로벌 인기라는 기본값에서 한 단계 성숙해, 보다 높은 가치, 취향과 미의식, 여기에 중심의 책임을 지닌 ‘낭중지추’가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