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법정 처리시한 12월 2일

2002년 이후 시한 2014·2020년 두 번 지켜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에도 위법 여전

이미지 크게보기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등조정심사소위원회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등조정심사소위원회에서 우원식 소위원장과 의원들이 예산안 관련 등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이 법정 시한(12월 2일)을 넘기고 말았다. 예산안 항목에 대한 여야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이태원 참사, 검찰 수사 등으로 정치적 상황마저 극단으로 치달은 상태다. 일각에선 국회가 늦어도 오는 9일 마지막 정기국회 본회의에선 예산안을 처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최악에는 사상 최초 준예산 편성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특히 2002년 이후 지금까지 국회는 단 두 차례를 제외하고는 모두 법정 시한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고질적인 국회 예산안 뒷짐 처리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예산안 심의 기한은 ‘헌법’에 명시된 규정이다. 헌법 제54조 2항에 의하면 정부는 회계연도마다 예산안을 편성해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이를 의결해야 한다. 법치주의 근간인 헌법이 규정한 내용이지만 국회는 2002년 이후 20년간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지킨 것은 2014년과 2020년 단 두 차례뿐이다.

국회는 2002년부터 12년 동안 예산안 법정 시한을 많게는 한 달이나 넘겼다. 심지어 2012년과 2013년에는 그해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해 이듬해인 2013년과 2014년 1월 1일에 각각 통과시켰다. 이에 국회는 2014년 ‘국회선진화법’을 만들면서 대안을 내놓았다. 국회법 제85조는 ‘예산안 등 법률안의 심사를 매년 11월 30일까지 마쳐야 하며 기한까지 심사를 마치지 않으면 그다음 날인 12월 1일 바로 본회의에 부의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했다. 국회가 예산안을 예정된 시한까지 심사하지 않으면 기획재정부가 제출한 정부안을 그대로 본회의에 상정한다는 내용이다. 이른바 예산안 자동 부의 제도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외조항이 발목을 잡았다. 국회법에는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합의한 경우에는 예산안을 자동 부의 하지 않을 수 있다. 국회가 예외조항을 만들어 국회법 제정 의도를 교묘하게 피한 것이다.

만약 여야가 회계연도 개시일(매년 1월 1일)까지 넘길 경우 초유의 준예산 편성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준예산은 국회가 회계연도 개시일 전까지 예산안을 확정하지 못하면 1년 전 예산에 준해 국가 예산을 잠정적으로 집행하는 조치를 뜻한다. 정부는 국회에서 예산안을 의결할 때까지 ‘국가기관의 유지 및 운영’ ‘법률상 지출의무의 이행’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사업의 계속’ 등에만 국가재원을 사용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정부와 공공기관의 계약직 직원과 학교 시간제 교사 등이 일시적으로 해고되는 사태가 뒤따를 수 있다. 또한, 도로·철도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연구·개발(R&D), 서민복지 예산 등도 제때 집행되지 않아 국가 혼란이 초래될 수도 있다. 준예산 편성의 위험성은 이뿐만이 아니다. 2011년 한국법제연구원은 “현행 헌법과 국가재정법에 준예산 집행이 명시돼 있지만 ‘요건’ 등은 구체적으로 담겨 있지 않다”면서 보고서를 통해 위헌 가능성을 지적했다. 학계에선 준예산 조항의 취지가 국회 공전이나 처리 지연 등을 상정한 것이 아니라 천재지변이나 국회 해산 등 불가피한 상황을 전제로 준예산 조항을 넣은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준예산이 편성되더라도 정부의 주요 사업과 관련, 신규 사업을 자동으로 배제하는 것인지, 기존 사업이라도 일체의 확장을 불허 하는 것인지에 대한 정의도 불분명하다.

이 같은 고질적인 예산 처리 지연에 국회예산정책처는 보고서를 통해 “원내 교섭단체 간 협의에 기반한 국회운영 원리와 예산안 심사를 다른 쟁점 법안의 처리와 연계하는 관행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해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