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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TA 면역력, 농촌 경쟁력 되다 - 1 ‘망한다’ 두려움이 ‘토종 수출’ 자신감으로

2004년 칠레와 첫 체결 뒤
58개국과 FTA 18건 발효
일부 농가들 피해 겪었지만
새 작물 도입 등 구조 개선
한국, 농지1㏊당 부가가치 1위

정부 ‘스마트 팜’ 적극 지원
수출경쟁력 갖춰 해외 진출

5년 내 청년농 3만 명 육성
무역 위기에도 굳건히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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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을 시작으로 우리나라는 전 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크고 작은 FTA를 체결했다. 지구 반대편 국가에 대해 시장을 개방하는 자체가 당시엔 엄청난 모험이었는데 결국 우리의 시장 개방은 성공적이었다. 시장 개방에 대한 두려움은 이제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밀려드는 수입 농산물에 우리 농업·농촌이 휩쓸려버릴 줄 알았지만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농업·농촌 현장에서의 노력으로 얻은 결과다. 비록 새로운 무역 질서의 도래 및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러 대외적 위기들은 상존하고 있고 우리 농업·농촌은 매번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지만 FTA 개방 과정에서 얻은 면역력으로 그 도전에 당당하게 응하고 있다. 우리 농업·농촌이 FTA 시장 개방 과정에서 얻은 경쟁력으로 미래산업으로서 농업의 발전 가능성을 어떻게 키워가고 있는지 총 8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FTA 본격화, 농업 체질 개선 기회=우리나라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이르기까지 총 58개국과 18건의 FTA를 발효했다. 정부가 첫 체결국으로 칠레를 선택한 데는 우리의 민감 분야인 농산물이 칠레와 상호 보완관계에 있고, 한국 산업에 필요한 전략 광물 자원이 칠레에 다량 매장돼 있는 이유가 컸다. 당시 통상 당국도 FTA의 효과에 대해선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시장 개방은 국부를 창출하는 효과를 낳았다. 물론 FTA로 인해 농업 분야 시장 개방이 이뤄지면서 일정 정도 농민들의 피해는 불가피했다. 하지만 전통적인 농사에 기대고 있던 국내 농업에 시장 개방이란 ‘극약’은 체질 개선의 기회로 작용했다. 한국의 농업은 양자·다자 FTA 체결 이후 적응력이 약한 농가와 작물의 퇴출, 새로운 작물의 도입 등 상당한 구조 변화를 경험했다. 이 구조 변화에 적응하는 농업인의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농업구조 개선을 위한 농림축산식품부 등 정부의 정책은 농업 생산기반 정비, 농업 체질 개선 등으로 추진됐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21일 “정부는 FTA를 본격화하기 이전인 1990년대 초부터 꾸준히 재정 지출과 제도 정비를 통해 농업구조 개선을 추진했다”며 “FTA 체결과 발효로 인해 농산물 시장 개방은 불가피했지만 이로 인해 국내외 농업의 경쟁과 협력은 더욱 활발해지고, 농업에 대한 투·융자와 제도 정비도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정부의 FTA 국내 보완 대책, 농업 투·융자 제도 정비는 농업에 자본을 제공해 규모화를 촉진했다. 또 생산 지원의 내용, 품목별 보호의 수위와 시장 개방 일정, 피해 보완의 범위 등을 명백하게 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이 결과 농업의 축산화와 농업 생산의 시설화, 자동화, 기계화가 가능했다.

이런 노력으로 인해 시장 개방에도 불구하고 한국 농업은 크게 위축되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연구 결론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통계에 따르면 한국 농업의 규모와 생산성은 다른 나라의 농업과 견주어 볼 때 크게 뒤지지 않는다. 한국의 농림수산업 부가가치는 세계 15위, 농지 1㏊당 부가가치는 1위이고, 농촌 인구 1인당 부가가치는 15위에 해당한다. 농업구조 개선 결과 넓은 농지가 필요한 식량작물(특히 쌀) 생산액의 감소와 좁은 농지에서도 높은 생산액을 감당할 수 있는 축산업과 시설채소 생산액의 증가로 인해 농업 분야의 생산성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특히 농업구조 개선 과정에서 전통적인 자급농이 줄고, 농산물 판매를 주업으로 하는 전업농이 늘어났다. 전업농들은 시장 개방에 적응하는 주체로 부상했고, 국내 농업 분야 경쟁력은 이들의 땀과 노력으로 이뤄졌다.

◇스마트 농업, FTA 극복하는 미래 산업=윤석열 정부의 농정은 농업의 미래 성장산업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에는 고령화하는 농업·농촌에 젊은 피를 수혈하는 농업 인력 양성 정책과 함께 스마트 농업을 통한 농업의 생산성 향상과 새로운 비즈니스로서의 가치를 높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 추진은 미래의 FTA 시장 개방에 맞설 수 있는 우리 농업·농촌의 기초체력이 된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으로, 농식품부는 2027년까지 청년농(40세 미만 경영주) 3만 명 육성을 목표로 ‘청년농 육성 기본계획’을 마련했다. 이들이 농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스마트팜 교육을 추진한다. 정부는 전국 4개소의 스마트팜 혁신밸리에서 연간 약 200명의 청년농을 양성한다. 혁신밸리 내 ‘청년창업 보육센터’에서 스마트팜 이론과 실습 교육 지원을 받는다. 20개월의 교육을 거친 청년농들은 3년간 임대형 스마트팜과 농촌에 정착할 수 있는 임대주택도 제공받게 된다. 정부는 청년농의 스마트팜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나 한국농어촌공사 농지에 스마트팜을 설치해 최대 30년까지 장기 임대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농산물의 생산·유통·소비 전 과정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스마트 농업’을 통해 교육받은 청년농들이 농업 분야 전반에서 활약할 수 있는 산업 토대를 닦는다는 계획이다.

이미 스마트팜은 K-농업의 대표 상품으로 해외로도 진출하고 있다. 2020년 5월 국내 스마트팜 기업이 대표적인 농업국가인 호주와 스마트팜 수출계약 합의각서(MOA)를 체결하기도 했다. 같은 해 10월 인도네시아에선 수출용 현지법인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MOU)가 2건 체결됐다. 쿠웨이트와 컨테이너형 스마트팜 수출계약도 2021년 체결됐다. 쿠웨이트 농수산청은 압둘라 신도시 건설사업 등에 한국형 스마트팜 기술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수입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던 시절을 벗어나 경쟁력 있는 우리 농산물의 해외 수출로 FTA를 극복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해외 진출을 노리는 청년농에겐 시장 개방이 기회가 될 수 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교역이 제한적이었음에도 농수산식품 수출액은 113억6000만 달러(농식품 85억6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건강식품과 샤인머스캣, 딸기 등 신선농산물이 동남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정부는 2027년 농식품 수출 150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스마트팜·푸드테크 등 농업 전·후방 산업도 함께 수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FTA 등 시장 개방 압력은 지속되겠지만 농업을 미래전략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정부의 정책 지원을 통해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정민 기자 bohe00@munhwa.com

／ 제작지원／
2022년 FTA이행지원 교육홍보사업



“피해 품목 중심 대응 탈피… 동물복지 등 포괄적 정책지원 필요”

■ FTA 18년, 도전과 과제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시장 개방에 대응해 정부의 정책 지원과 현장 농업인들의 노력이 농업 분야 구조 개선 등 체질 전환으로 이어지는 성과를 거뒀지만 넘어야 할 산들이 남아 있다.

대외 환경의 급변,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대두된 식량 안보와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으로 인한 세계 통상질서의 불안정성은 우리 농업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 내부적으론 2010년대 이후 급속화하는 농촌의 고령화와 농촌 소멸 현상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이 같은 대내외적 변화는 정부의 정책 지원 방식도 변화해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지성태 서울대 국제농업기술대학원 교수는 FTA 대응 지원 정책과 관련해 “FTA로 인해 농정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었고, 현장에서도 변화하려는 의미 있는 노력들이 있었다”며 “생산자들도 소비자 지향적으로 됐고, 그들의 니즈를 파악한 생산 품목의 전환도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현재 대두되는 다양한 이슈들은 그간 품목 피해 중심의 대책에서 보다 포괄적이고, 공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정책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 교수는 “FTA 시장 개방으로 인해 입은 피해조차도 사실 불분명하다”고 지적한 뒤 “농촌 인력 감소가 한국 농업의 구조적 문제와 시장 개방 영향 등이 점철돼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시장 개방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지 교수는 “수입 품목 역시 직접 경합 관계가 없지만 간접 영향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에 정책 지원 역시 이런 점들을 폭넓게 아울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FTA 대응 지원 방식이 새로운 이슈를 포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생산·소비에만 초점을 맞춘 정책에서 탄소배출 등의 환경 문제와 동물 복지, 외국인 노동자 문제 등에 대해서도 정책 지원이 요구된다. FTA도 진화하고 있기에 이 같은 이슈에 대해 정부의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는 의미다. 오내원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시니어이코노미스트는 “농지에 의존하는 농업은 한계가 있으며, FTA 대응 정책도 생산이나 상품 이동에만 국한해 이뤄져선 안 된다”며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해서라도 ‘농업·농촌이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 폭넓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정민 기자 bohe0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