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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문화부장

얼마 전 구순을 바라보는 연극연출가 김우옥 선생이 연극 ‘겹괴기담’을 무대에 올렸다. ‘겹괴기담’은 현대 구조주의 연극의 거장 마이클 커비의 작품으로 1978년 뉴욕에서 초연된 실험극이다. 작품의 포인트는 무대연출이다. 가로, 세로 각각 6m인 상자 모양 무대에 6개 반투명 막이 드리워져 무대를 5개 공간으로 나눈다. 관객들은 무대 양쪽에 마주해 자리한다. 막이 오르면 두 이야기가 각각 무대 양쪽 끝에서 시작해 장면이 바뀔 때마다 막 뒤 공간으로 이동한다. 관객 입장에선 가까이에서 보이던 이야기는 점점 멀어지고, 멀리서 보이던 이야기는 점점 가까워진다. 이야기보다 형식 파괴를 통해 관객에게 충격을 주는 작품이다.

그런데 무대연출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관객 반응이었다. 김 연출가가 이 작품을 처음 무대에 올린 것은 1982년. 당시 반응은 ‘이게 무슨 연극이냐’ ‘이해 불가’ 판정이었다. 아쉬움에 200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장으로 정년퇴직할 때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 호평을 받았지만, 내부 의견이었다. 그런데 20여 년 만에 다시 오른 이번 공연엔 MZ세대 젊은 관객이 몰려들었고, 너무 재밌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이들이었다. 88세 노연출가의 16년 만의 복귀작이자, 원로 연극인들의 축제인 ‘늘 푸른 연극제’의 개막작인데 말이다. 로비에 가득한 젊은 관객을 보면서 겹쳐 떠오른 것이 있었다. 70대 배우 윤여정에 대한 MZ세대의 열광이었다.

이들뿐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문화계에서 70·80대 예술가들의 파워가 놀랍다. 무대에 섰다 하면 만원사례, 출간했다 하면 베스트셀러인 스타들의 등장이다. 신구, 이순재,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 배우 등은 요즘 ‘방탄노년단’으로 불리며 사랑받는다. 출판계에서 70대 정호승, 나태주 시인은 이름 자체가 브랜드다. 여기에 84세 가수 패티김이 돌아오고, 72세 조용필도 신보를 낸다. 100세 철학자 김형석 선생도 빠질 수 없다.

물론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 노년의 예술가가 유난히 젊은 세대에게 열광적 반응을 얻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볼 일이다.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와 겹쳐 가부장제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최근 10여 년 사이 전문가의 권위가 추락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어른은 사라졌다. 특히 정치권력의 부패, 사회적 윗세대에 대한 실망, 세대 차와 세대 갈등이 겹쳐 ‘586’ 꼰대라는 단어가 상징하듯 ‘어른’의 몰골은 추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뒤편으로 몰렸던 노년의 예술가들이 멋있는 존재로 등장했다는 것은 흥미롭고 의미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길을 성실하게 지켜오며 내공을 닦고 실력을 키웠다. 자기 삶을 통해 젊은 세대들에게 해줄 말과 이야기, 철학을 가지고 있다. 시대가 원하는 멋진 어른의 모습은 최소한 이래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들이 대부분 예술가라는 점은 한국 사회에서 멋진 어른은 ‘현실’이 아니라 일종의 ‘상상계’에서나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상계는 현실을 바꾸는 힘이 있다. 무대 위, 책 속 멋진 어른들의 귀환이 현실 속 멋진 어른의 등장을 끌어내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