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미안해”… 추모 물결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 공간에서 한 자원봉사자가 거리에 떨어진 추모 메시지를 다시 붙이고 있다. 문호남 기자

■ 안타까운 사연들

부친 “엄마 손에 못 키워 미안”
키워준 조모는 지난 1월 별세
빈소 찾아온 친모도 대성통곡

부모 아프리카 출장중에 비보
“딸, 30년 인생은 마감했지만
‘남들보다 1.5배 살았다’ 위로”

“중학생 때 친구들 다 있다던 핑크색 노트북을 사달라고 그렇게 졸랐었는데, 결국 안 사줬었어. 살아생전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할걸….”

2일 오후 11시 40분 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한 장례식장. 발인을 하루 앞두고 빈소엔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숨진 외동딸 최모(여·34) 씨의 아버지 A(66) 씨만 홀로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숨진 최 씨의 친할머니가 지난 1월 별세한 뒤 9개월 만에 또 찾아온 비보다. 최 씨가 갓난아기 때 재혼한 A 씨는 “엄마 손에 못 키워서 항상 미안했다”며 “네 운이 여기까지였느냐…”고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TV로 보던 일이 내게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살다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나 미치겠다”고 했다. 빈소를 찾은 최 씨의 친어머니는 찢어지듯 통곡했다.

‘스무 살 때와 다름없는 아기 같은 귀여운 딸’이었던 최 씨는 피범벅 된 파란색 천, 지갑, 휴대전화와 함께 아버지에게 돌아왔다. 딸의 옷은 없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가방도 옷도 없고, 피 묻은 천만 있었다”고 답했다. 얇은 갈색 지갑엔 신분증과 카드 하나만 들어 있었다. A 씨는 ‘허탈’ 그 자체라고 여러 번 말했다.

‘놀러 가 사망했는데 지원금 왜 주느냐’는 악플엔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다. 그는 “제 딸이 거기 간 게 죽을 만큼 잘못한 건 아니잖습니까”라며 “지원금으로 욕하는데, 이것(지원금)도 찢어버리고 싶다”고 토로했다. 이어 “경찰의 임무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 아닙니까”라며 “후진국 ‘복사 붙여넣기’”라고 언성을 높였다. 분노에 찬 그는 전날 윤석열 대통령의 화환을 치웠고, 빈소로 찾아온 오세훈 서울시장은 외면했다.

지난 1일 오후 4시쯤 이대목동병원에도 무남독녀 임모(여·30) 씨의 빈소가 마련됐다. 아프리카로 출장 간 아버지 임모 씨와 어머니 정모 씨가 불가피하게 늦게 귀국해 빈소를 그제야 차렸다. 정 씨는 “비행기가 일주일에 4대밖에 없어 이제야 왔다”면서 황망해했다. 아버지는 “아내가 연락받고 실성한 것 같았다”며 “첨엔 당연히 잘못 전해진 소식일 것이라 생각했고, 핼러윈인지 뭔지 내 딸이 거기 왜 갔나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외고와 해외 대학교를 졸업한 임 씨는 연예계에 근무하다 최근 벤처 사업을 시작한 수재로, 국내 유학생들 사이 알려진 ‘인싸’였다고 한다. 빈소가 마련된 첫날에만 친구 250여 명이 다녀갔다. 어머니 정 씨는 “30년으로 인생 마감했지만, 남들보다 1.5배 더 살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고 전했다.

임 씨의 인스타그램 계정 마지막 글엔 400여 개의 추모 댓글이 달렸다. ‘열정, 밝은 에너지, 따듯, 친절, 사랑, 긍정’이 주로 언급됐다. 홍정욱 올가니카 회장은 “함께 토론하던 모습이 떠올라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했다. 한 지인은 “지금 언니가 있었다면 분명 울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케이크 먹으러 가자 했을 텐데”라며 “너무 허망하다…많이 보고 싶어요”라고 전했다.

이예린 기자 yr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