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SSG의 김원형 감독은 프로야구 40년 역사상 와이어 투 와이어로 정규리그를 제패한 최초의 사령탑이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김 감독은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에 수평 리더십으로 선수단을 이끌었다. SSG 제공

■ 베스트 리더십 - KBO 최초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일군 김원형 SSG감독

왕년의 스타플레이어

19세때 선동열과 선발 맞대결
완투승 따내며‘어린왕자’별명
1993년엔 최연소‘노히트노런’

선수들과 일대일 소통

고효준에‘슬라이더’숙제 내려
안정적 투구 되찾아 부활하게
서진용엔‘투구패턴 변화’처방
시즌 21세이브 수확에 큰역할

뚝심·추진력으로 승부수

짜내기 작전… 여름징크스 극복
숨어있는 장점 발굴‘혜안’으로
2군강등 위기 선수 끝까지 기회

이미지 크게보기

프로야구 SSG는 2022 신한은행 쏠(SOL) KBO리그에서 한국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대기록을 달성했다. 출범 40주년을 맞은 KBO리그에서 역대 최초로 개막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단 하루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는 와이어 투 와이어(wire-to-wire) 우승을 달성한 것이다. 또 SSG가 올해 올린 88승(4무 52패)은 구단 한 시즌 최다 승 타이기록. 지난해 SK에서 SSG로 간판을 바꾼 지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따냈다. SSG는 한국시리즈에 올랐던 2007년과 2008년, 2010년(이상 정규리그 1위), 2018년(정규리그 2위)에 모두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SSG에 올해 정규리그 1위가 더욱 특별한 이유다.

김원형(50) 감독은 가장 완벽한 우승을 차지한 SSG의 지휘자. 프로야구 정규리그는 부상 등 변수가 많고, 임기응변이 요구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김 감독은 지난여름 ‘승부수’를 띄웠다. SSG는 SK 시절부터 늘 여름이 고비였다. 대표적인 예가 2019년. SSG는 그해 7월 18일까지 치른 전반기 96경기에서 64승 1무 31패로 압도적인 1위를 달렸다. 그러나 무더위가 절정이었던 8월 한 달 동안 13승 12패로 주춤했고, 결국 시즌 막판 두산에 대역전극의 희생양이 됐다.

하지만 김 감독은 ‘여름 징크스’를 없앴다. SSG는 올해 혹서기(7∼8월) 두 달 동안 치른 41경기에서 29승 12패를 남겼고, 승률은 무려 7할(0.707)을 넘겼다. 김 감독은 매 경기 사활을 걸었다. 이른바 ‘짜내는 야구’로 어떻게든 승수를 챙기는 데 주력했다. 실제 7∼8월 SSG의 희생번트는 23개로 리그 전체 3위였고, 대주자 기용은 33회로 1위였다. 그리고 이 승부수는 적중했다. 한여름 승수를 크게 벌어 놓은 SSG는 2위 LG의 매서운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다. 여름 동안 사력을 다한 SSG는 9월 이후 주춤했지만, 전략적인 여름 승부수 덕에 정규리그 1위를 확정했다.

김 감독은 스타플레이어 출신. 투수였던 김 감독의 현역 시절 별명은 ‘어린 왕자’였다. 프로 데뷔 해인 1991년, 만 19세의 어린 나이로 당시 국보급 투수로 불린 선동열(해태)과 선발 맞대결을 펼쳐 완투승을 따낸 뒤 붙은 별명이다. 훈훈하고 앳된 얼굴에 투수로는 작은 체격(177㎝·75㎏)도 이 별명을 얻는 데 한몫했다.

물론 김 감독은 실력도 빼어났다. 1993년 당시 역대 최연소 노히트노런(20세 9개월 25일)을 달성했고, 현역 시절 명석한 두뇌와 주무기인 폭포수 커브를 앞세워 통산 134승(역대 9위)을 챙겼다.

이미지 크게보기

김 감독은 SSG 투수들에게 ‘족집게 과외 선생님’으로 통한다. 투수마다 장점과 성격 등을 꼼꼼하게 파악해 내린 ‘맞춤형 처방전’은 2년간 SSG 투수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강제 은퇴 위기에서 올해 부활에 성공한 왼손 불펜 고효준이 가장 좋은 예다. 고효준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김 감독은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고효준에게 ‘무조건 슬라이더로 카운트를 잡아라’라는 숙제를 내렸다. 제구가 들쑥날쑥한 직구보다 구위가 좋은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사용하면 훨씬 안정적인 계투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 고효준은 시즌 개막을 앞두고 슬라이더 제구를 중점 연마했다. 올해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활용한 고효준은 45경기에서 1승과 7홀드, 평균자책점 3.72의 빼어난 성적을 남겼다. 3.72는 고효준이 30이닝을 던진 시즌 중 최저 평균자책점이다.

또 올 시즌 21세이브를 챙긴 서진용에게 내린 처방은 ‘포크볼 투구 패턴 변화’였다. 서진용은 포크볼을 결정구로 활용했는데, 김 감독은 올핸 “스트라이크를 잡는 용도로 사용해라”라고 조언했다. 서진용을 상대하는 타자들은 바뀐 투구 패턴에 애를 먹었다.

김 감독의 열의나 탐구열은 어느 감독에도 뒤지지 않는다. 김 감독은 의문이 생기면 끝까지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경기를 마친 뒤 혼자 새벽까지 영상을 돌려보기 일쑤다. 김성용 운영팀장은 “김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해답이 나와야지 퇴근길에 오른다”고 귀띔했다. 김 감독의 야구에 대한 고민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원정 이동길에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다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 나오면, 코치들과 해당 장면에 대한 토론이 이어진다. 홈구장인 인천랜더스필드 내 감독실도 언제나 코치실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 다른 구단의 일도 우리 일로 보고, 늘 ‘유비무환’의 자세를 갖자는 의미다.

김 감독은 팀 장악력이 뛰어나다. 부드러운 외모와는 달리 카리스마가 넘친다. 실제 SSG 선수들에게 ‘감독님은 어떤 분이냐’고 물으면, “카리스마가 있다” 혹은 “무섭다”는 답이 돌아온다. 김 감독은 기본을 망각한 플레이에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프로는 ‘어떤 상황에서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게 김 감독의 신념이다. 특히 그 대상이 스타플레이어라면 불같이 화를 낸다. 또 선수단 내 배려와 희생이란 원칙을 훼손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하지만 뒤끝은 없다. 화를 냈다면 당일로 끝난다. 다음 날엔 선수를 다시 불러 농담이나 장난으로 풀어준다.

대부분 감독은 코치를 통해 ‘필터’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김 감독은 감독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 무게를 잡는 일은 없다. 선수들을 직접 일대일로 만나 자기 뜻을 전달한다. 슬럼프에 빠진 선수에겐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최주환이 올해 극심한 타격 슬럼프에 빠져 헤맬 때 어루만져주며 격려했고, 결국 전반기 타율 0.161에 머물렀던 최주환은 후반기 타율 0.262로 반전했다. 김 감독의 ‘수평 리더십’은 선수단의 동기를 유발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김 감독은 늘 자신을 낮춘다. 지난 4일 정규리그 1위를 확정한 뒤 “개막전부터 1위를 지킨다는 것이 선수단에는 큰 도전이었다. 어려운 상황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선수들은 하나가 되어 이겨냈다”고 선수단에 공을 돌렸다.

김 감독은 숨어 있는 장점을 발굴하는 혜안도 갖췄다. 그리고 한번 선수에 관한 판단이 서면, ‘뚝심’ 있게 밀어붙인다. 한승진 데이터파트장은 “지난해 시즌 초반 박성한이 수비가 크게 무너지자 주변에선 2군으로 내려야 한다고 했지만, 김 감독님이 끝까지 기회를 줬고 결국 박성한은 리그 수준급 유격수가 됐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꼼꼼하다. SSG는 평균 연령이 28.7세로 리그에서 가장 형님뻘 팀. 1982년생인 추신수와 김강민 등 40대 선수들이 팀 내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이곳저곳 고장이 나기 마련. SSG는 항상 부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구단 컨디셔닝 파트의 의견을 경청한다. 컨디셔닝 파트의 보고를 받는 날엔 사소한 것일지라도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주변엔 “내가 급하게 마음을 먹더라도 언제든지 ‘노(No)’라고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김 감독은 올가을 포스트시즌에서 통합 우승에 도전한다. SSG 선수단은 지난 13일부터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한국시리즈 대비 훈련에 돌입했다. 일각에선 SSG의 정규리그 막판 뚝 떨어진 페이스에 걱정이 많다. 하지만 김 감독은 정규리그에서 ‘위기’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을 때마다 보란 듯이 이겨냈다. 김 감독은 “우리가 잘한 영역이어도 보완할 점이 있다면 확실히 짚고 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미지 크게보기 SSG의 조원우(오른쪽) 벤치코치는 김원형 감독을 ‘그림자 보좌’하며 정규리그 우승에 힘을 보탰다. 사진은 조 코치가 2군 사령탑을 맡았던 지난 2021년 5월 26일 경기 수훈 선수를 시상하는 모습. SSG 제공

조원우 코치와는 쌍방울 선수때부터 절친… 롯데선 조감독·김코치로 의기투합하기도

■ 1994년부터 이어진 인연

김원형(50) SSG 감독에게 조원우(51) 벤치코치는 든든한 동반자다. 나이는 김 감독이 조 코치보다 한 살 어리다. 게다가 조 코치는 2016∼2018년 롯데 사령탑을 지낸 감독 출신이다.

요즘 KBO리그에서 나이 많은 코치가 감독을 보좌하는 일은 낯선 일이 아니다. 감독 출신 코치의 존재는 사령탑 입장에선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주변에선 이 둘을 두고 ‘영혼의 파트너’라고 표현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지난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졸 출신인 김 감독이 1991년 쌍방울에 입단했고, 대졸 내야수인 조 코치가 1994년 합류하면서 둘은 한솥밥을 먹었다. 한 살 차이인 두 사람은 2014년까지 쌍방울과 SK(현 SSG)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두 사람이 절친이 된 것은 1999년 쌍방울 시절. 김 감독은 그해 7월 타구에 얼굴을 맞고 코뼈와 광대뼈가 함몰되는 큰 부상을 당하면서 32이닝을 던지는 데 그쳤고, 심리적 안정감을 회복하기까지 1년 이상이 걸렸다. 김 감독은 부상 이후 맘고생이 심했는데, 당시 고관절 부상으로 병원에 있던 조 코치에게 문병을 간 이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각별한 사이가 됐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 지도자가 된 이후에도 둘의 인연은 이어졌다. 조 코치가 2016년 SK를 떠나 롯데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조 코치는 2017년 김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김 감독 입장에선 이적을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계약 기간이 한 시즌 남은 상황에서 이동은 큰 모험이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조 코치의 요청에 “꼭 다시 같이 야구를 해보고 싶었다”며 양해를 구하고 SK를 떠나 수석코치로 롯데에 합류했다. 두 사람은 2018년까지 함께 지냈다.

그 후 3년이 지났고, 정반대 상황이 됐다. 지난해 김 감독이 SSG 지휘봉을 잡았고, 조 코치는 2군 감독으로 부임했다. 2021시즌 후반기엔 조 코치가 1군에서 벤치코치 역할을 맡았다.

올해 와이어 투 와이어로 정규리그를 제패한 SSG는 두 지도자의 의기투합 효과를 톡톡히 봤다. 김 감독의 조 코치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다.

김 감독은 “조 코치가 야수 경험이 풍부한 만큼 저보다 야수 쪽에서 시야가 넓다. 감독 경험이 있는 조 코치는 냉철하게 분석하고, 특히 내가 못 보는 것들을 볼 수 있어 든든하다”고 말했다.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