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영현 한국복지대학교 특임교수(前 보건복지부 기획조정실장)

이미지 크게보기최영현 교수

병원에 다녀오면 마음이 무겁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아픈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치료는 잘 받고 있는지, 병원비는 마련하였는지 모든 게 걱정이 든다. 혹시나 돈이 없어서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더 아프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의료비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의료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건강보험 혜택이 계속 높아지고 있지만, 전체 의료비의 약 35%를 환자 본인이 지불하고 있어 의료 취약계층에게는 아직도 병원 문턱이 높은 게 현실이다.

작년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집을 팔아 치료비를 마련했지만, 결국 치료를 받지 못하고 아들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는 어느 어머니의 안타까운 증언사례를 생각하면 깊은 회한이 든다. 한 번만 맞으면 완치까지 바라볼 수 있는 치료약이 있었지만,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집까지 팔아 5억원을 마련했으나 결국 치료시기를 놓쳤다고 한다. 비싼 치료약은 대부분 건강보험적용을 받지 못해 환자가 약값을 100% 마련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처럼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다니 부모로서 얼마나 애통하고 가슴을 칠 일인가.

윤석열 정부는 사회적 약자부터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약자복지’를 주창하였다. 특히. 취약계층의 의료비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고 공언하였다. 의료복지가 필요한 국민이 의료비 부담으로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확대한다고 한다. 크게 박수를 보낼 바람직한 환자중심 정책이다. 암, 희귀질환, 뇌질환, 심장질환, 중증화상, 소아유전검사 등 중증질환의 경우 의료비가 많이 든다. 특히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 의료비는 수억원까지 소요되어 취약계층의 경우 의료비 지원이 더 절실하다.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확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료 취약계층에게 지원하는 재난적 의료비 예산은 올해 약 450억원이고, 내년에는 950억원 수준으로 증액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규모는 총 의료비 추산액 약 100조원 중에서 환자부담액 35조원의 약 5%를 지원목표로 삼는다고 가정해도 1조 7천억원이 필요하여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의료 약자복지로 천명한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이 궁극적으로 의료 취약계층의 기대를 충족하고, 건강보험의 비급여 영역을 보완하는 의료비지원 기본제도로 성공시켜 나가려면 대 혁신을 해야 할 것이다. 몇 가지 제언을 드리고 싶다.

우선, 의료비 지원 신청절차를 환자중심으로 최대한 편리하게 간소화해야 할 것이다. 작년 환자단체를 통한 의료비 신청 경험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71%가 복잡한 지원서류 등 제도의 복잡성에 불만족을 느꼈다는 것이다. 왜 서류가 많이 필요한가. 진료비 내역은 병원에서 발급하는 진료비 내역서 하나면 충분하다. 소득과 재산서류는 건강보험 내부자료로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병원에 재난적의료비 지원안내판이라도 설치하여 제도자체를 몰라 의료비 지원을 하지 못하는 사례가 없도록 혁신해 주었으면 좋겠다.

둘째는 개인별 지원금액은 의료비와 소득수준에 연계하여 정할 필요가 있다. 올해의 경우 최대 지원액은 3천만원이고, 내년부터 5천만원으로 늘린다고 한다. 저소득 취약계층의 경우 의료비의 80%까지 지원한다고 하면서 최대 5천만원으로 상한액을 정하고 있으니, 병원에서 수억원의 의료비가 나온다고 하면 누가 선뜻 치료를 진행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의료비지원 사전상담제’를 도입하여 고액의 의료비가 예상되는 경우 최선의 의료비 지원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최저생활자의 경우 정부가 정한 의료비의 80%까지 지원될 수 있도록 여러 의료비 지원사업을 통합하여 환자 맞춤형 지원방법을 찾는 제도운영의 혁신이 필요하다.

셋째로 의료 약자복지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재난적 의료비 재원의 지속적인 확보방안을 찾아야 한다. 현재의 건강보험 재정출연금, 건강보험 과징금 및 복권기금으로는 재원 조달에 한계가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일부 부담하는 방안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국민이 내는 모금액에서 의료 취약계층에게 의료비를 지원하는 것은 공동모금의 목적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난적 의료비 재원확보를 위한 최고의 방안은 제약사가 건강보험에 납부하는 ‘건강보험 위험분담제 환급금’을 활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제약사가 내는 건강보험 환급금은 고가의 치료약을 건강보험에 등재하는 경우 제약사가 납부하는 부담금이다. 이 환급금은 원래 중증환자에 쓰여지는 고가의 치료약 가격을 낮추는 대신 건강보험에 납부하는 것으로 중증환자의 의료비로 사용하는 것이 제도의 명분에도 부합하다고 할 것이다. 작년 제약사가 건강보험에 납부한 환급금은 3,063억원이었다. 올해 환급금은 더 증가할 것이고, 조만간 1조원대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제약사가 내는 건강보험 환급금으로 매년 1조원대의 재난적 의료비 지원기금을 조성하게 된다면 의료비 재원확보의 지속성이 보장되어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례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재난적 의료비 사업을 혁신하여 의료 취약계층에게 희망을 주는 ‘의료 약자복지’의 기본틀로 튼튼하게 작동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