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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송가인 ‘성주풀이’

사진 한 장에 눈길이 머문다. 인자한 할머니(1926년생)와 영특한 손녀(1975년생) 같지만 전 세계가 주목하는 ‘투 샷’이다. 무슨 말이 오갔을까. “내가 언제까지 군림할진 모르지만 넌 앞으로 통치 잘해라.” “영국을 부탁해.” 이 사진은 입헌군주제를 설명하는 데 두고두고 요긴한 자료가 될 것 같다.

한국에도 여왕이 세 분 계셨다. 선덕여왕 15년, 진덕여왕 8년, 진성여왕 10년. 모두 합쳐도 재임 기간이 엘리자베스 2세의 절반도 안 된다. 왕좌에 앉은 지 무려 70년(1952~2022). 열흘 붉은 꽃 없고 십 년 넘는 권세 없다는 말은 적어도 이분 앞에선 무색하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역사적 투 샷’ 이틀 후 서거한 여왕에 대해 “바위처럼 든든한 존재였다”고 애도했다.

수만 리 떨어진 하회마을 충효당 앞마당에서도 유건 쓰고 도포 입은 채로 추모행사가 열렸다. 예전에 이 마을을 찾아준 귀한 방문객에 대한 감사의 표현일 것이다. 정현종 시인의 말처럼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시의 제목도 ‘방문객’이니 상황에 제법 어울린다.

여왕이라 불리는 인물은 지금도 여럿이다. 피겨의 여왕도 있고 골프의 여왕도 있고 행사의 여왕도 있다. 그들에겐 임기가 없는 대신 인기가 있는 게 특징이다. 인기가 사라지면 그 길로 하야 신세다. 음악동네엔 유독 트로트의 여왕이 많다. 사회자가 출연자를 띄워주려고 부르는 별칭일 때도 있는데 시청자도 그러려니 눈감아주는 게 이 마을 미풍양속이다.

이렇듯 유명무실도 간혹 있지만 명실상부도 있다. 김연자, 주현미, 장윤정 등은 어느 무대에서도 여왕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가장 긴 시간 여왕이라 불린 가수는 딱 한 사람 이미자다. ‘동백아가씨’는 어떻게 엘레지의 여왕으로 굳어졌나. 본인이 부른 노래 ‘엘레지의 여왕’ 가사에 일부 단서가 나와 있다. ‘바람에 구름 가듯 흐르는 세월에/ 수많은 괴로움도 참고 견디어.’

어느 분야에서도 실력은 실적과 동의어다. 음악동네에선 명절에 TV에서 단독공연 정도 해내야 여왕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올해는 독과점 현상이 두드러졌다. ‘추석특집 2022 송가인 전국투어콘서트’(TV조선)를 시작으로 ‘김호중의 한가위 판타지아’(SBS), ‘히든싱어7’(JTBC)까지 글자 그대로 송가인이 종횡무진했다. 재방송까지 합치면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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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력과 존재감을 오래도록 유지하려면 여왕은 품격을 지키고 영토를 확장해야 한다. 국악 전공자인 송가인은 국악교육 비중 축소를 공언한 교육부 방침에 저항하며 ‘국악인 문화제’에서 눈물을 보였다.

트로트 가수 이전에 국악과 판소리를 15년 넘게 공부한 그는 “우리 학생들이 보고 자라야 할 우리의 문화를 학교에서 배우지 않으면 어디서 배울 수 있겠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부의 철회 방침이 나온 후에는 ‘송가인의 눈물이 통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김호중과 송가인의 ‘투 샷’은 한가위 작은 음악 선물이었다. 동생이 누이에게 의사를 타진했다. “국악과 성악이 함께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연락했는데 10초 만에 오케이 답장이 왔다.” 합심해 부르는 매우 특별한 ‘한오백년’을 들으며 음악동네의 영토가 조금 넓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낙양성 십리 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기 저 모양 될 터이니/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노래 ‘성주풀이’는 예전에 ‘민요의 여왕’ 김세레나가 부를 땐 그분이 마이크를 이쪽에 던지고 저쪽에 던지고 하는 묘기에 집중하느라 가사의 심오함에까진 이르지 못했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송가인이 부르는 ‘성주풀이’를 들어보니 감회가 색다르다. 노래에 나오는 성이 자꾸만 여왕이 잠든 윈저성으로 오버랩된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