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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의 음악동네 - 오승근 ‘있을 때 잘해’

가을이 문을 열자 연휴가 줄을 섰다. 올해처럼 이른 한가위(9월 10일)가 있었나. 살펴보니 2000년 이후 두 번째로 일찍 찾아온 추석이다. (참고로 2014년은 9월 8일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그러나 모두에게 친절한 날은 아니다. 친척들이 모이는 게 싫어 집을 비운다는 청춘이 많다. 엄마 친구 아들이 아니라 엄마 언니 아들과 비교당하기 때문이다. 취직 안 해? 결혼 안 해? 차라리 ‘사랑 안 해’는 어떨까. ‘내 얘길 너무 쉽게 하지 마’(백지영 ‘사랑 안 해’ 중). 한가위의 교훈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 말만은 꼭 했어야’보다는 ‘그 말만은 하지 말았어야’가 더 기억을 후벼 판다.

동창들이 모인 자리에서 들은 얘긴데 격렬한 언쟁이 끝난 후 부부가 동시에 이런 말을 했단다. “근데 우리가 뭣 때문에 싸우기 시작했지?” 그러고는 함께 외식하러 나갔다니 해피엔딩이다. 노래채집가가 낀 자리는 은연중 노래교실이 된다. 보통은 3가지 조건이 어우러질 때 그 역할이 빛을 발한다. 내용(적재)이 자리(적소)에 어울려야 하고 때(적시)에 맞아떨어져야 한다. 건망증의 혜택을 본 그 친구에게 축하의 의미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던(Can’t Help Falling in Love)’ 시절을 돌아보자며 선창했다. 그 노래의 시작부분에는 슬기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동시에 등장한다. 의역하자면 이렇다. ‘현인이 가라사대 서둘러 일을 망치는 자야말로 우둔하기 짝이 없다네(Wise men say only fools rush in)’. 한 박자 쉬고 가면 무난한데 급하게 밀어붙여 판을 깨는 미련함을 나무란 것이다. 고등학생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는데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신은 죽었다고 니체(1844∼1900)가 말했는데 솔직히 신의 생사는 모르겠고 다만 니체가 죽은 건 확실해.”

죽기 살기로 분을 참기 어려울 땐 미국 일리노이 출신의 록 밴드 REO스피드왜건의 노래 ‘이런 감정과 싸울 수 없어(Can’t Fight this Feeling)’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원곡보다 약간 느린 속도로 가사를 음미하면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은 들릴 것이다. ‘내가 무엇을 위해 싸우기 시작했는지 잊어버렸어’(I’ve forgotten what I started fighting for). 삶의 주행에도 스피드 건이 가끔은 필요하다. 여기저기 다툼으로 소란한 곳마다 배달하고픈 올가을 신청곡 목록이다.

교육방송(EBS FM)에서 생방송 음악프로(‘주철환이 만나는 세상’)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딱 한 번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했다. 허겁지겁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그때 담당PD가 미리 튼 노래가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였다. ‘조금은 지쳐 있었나 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 요즘도 그 노래만 들으면 미안함과 함께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

기차는 정해진 시간에 떠난다. 놓친 후에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시인의 권한이다. 산울림의 ‘회상’은 인생길에서 놓치기 쉬운 소중한 것들에 관해 담담하면서도 절절하게 일러준다.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던 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와지네’. 문득 서늘하지 않은가. 내 옆에 분명히 사람이 있다고 느꼈는데 언제부턴가 고립무원이었다는 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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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는 트로트로 하자. 사는 게 갑갑하고 앞길이 답답하다면 오승근의 ‘있을 때 잘해’를 추천한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반복)/ 있을 때 잘해 흔들리지 말고(반복)’. 이 노래는 순우리말 세 단어(있다, 때, 잘하다)가 주축이다. 우리는 언제 잘해야 할까. 그 자리에 있을 때 잘해야 하고 그 친구가 있을 때 잘해야 한다. 줄 것이 있을 때, 나눌 것이 있을 때, 다가갈 수 있을 때 잘해야 한다. 결론은 살아 있을 때 잘해야 한다. 싸우기만 하다 죽으면 동정은 받을지 몰라도 용서는 받지 못한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