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골매 ‘모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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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씨가 산 얘기를 시작하면 조용히 듣는 게 유익하다. 거기까지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동네 뒷산에라도 오르면 나는 야호 대신 송골매의 노래를 부른다. ‘산꼭대기 올라가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고’ 그런데 진짜 가슴에 새길 부분은 그다음에 나온다. ‘더 오를 곳이 없으니 더 느낄 것도 없더라’.

세상 꼭대기(‘Top of the World’)에 오른 기분은 어떨까. 카펜터스 남매의 증언에 따르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경이롭다’(There is wonder in most everything I see). 이유도 명료하다. ‘그대가 여기 있어서다’(And the reason is clear. It’s because you are here). 재주 많던 여동생 캐런은 꼭대기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다시 한 번 그 시절로’(‘Yesterday once more’) 못 간 채 젊은 나이(33세)에 세상을 떠났다.

송골매의 노래 속에는 영원에 대한 갈망이 들어있다.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철없던 시절에 들었노라’(송골매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중). 만나고 헤어지는 게 인생의 시간표라 ‘세상만사 모든 일이 뜻대로야 되겠소만’(송골매 ‘세상만사’ 중) ‘시간이 멈춰지면 얼마나 좋을까’(송골매 ‘모두 다 사랑하리’ 중). 하지만 시간이 멈춰지면 그건 죽음이다. 의사의 풀 죽은 목소리.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돌아갈 순 없지만 돌아볼 순 있다. 시각을 달리하면 죽음조차 끝이 아니다. 추억이 되살려주기 때문이다. 노래의 힘도 거기서 나온다.

배철수와 구창모가 나란히 앉아 농담도 하고 진담도 하는 모습은 흥미롭고 애틋하다. ‘저 둘은 진짜 사이가 좋은가’ 사랑이라 쓰고 사업이라 읽는 관계를 익히 보아온 방송 관계자로서 의심이 들기도 한다. 유재석이 묻는다(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7월 13일 방송). “그때 왜 갈라섰습니까?” 내밀한 건 당사자만 알겠지만 법원을 드나든 부부의 ‘헤어질 결심’은 대부분 성격 차이고 그룹이 해체될 때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십중팔구 ‘음악적 견해 차이’다. 그런데 탈퇴의 주역(?)인 구창모는 이번에 다른 말을 했다. “욕심 때문이었죠.” 갑자기 이런 가사가 떠오른다. ‘세상을 가지고 싶어 나 욕심부렸나’(허각 ‘우린 어쩌다 헤어진 걸까’ 중).

사람들은 필요할 때 만나고 중요할 때 헤어진다. 랜디 반워머(1955~2004)가 부른 ‘웬 아이 니디드 유 모스트’를 들어보자. ‘그대가 가장 필요할 때 그대는 나를 버렸다’(Left me just when I needed you most). 구창모의 고백은 김현식(1958~1990)의 ‘내 사랑 내 곁에’까지 연결된다. ‘철이 없는 욕심에 그 많은 미련에 당신이 있는 건 아닌지’.

‘한 조각을 잃어버려 이가 빠진 동그라미’는 40년의 공백을 깨고 다시 뭉쳤다. 공백은 비어 있다는 뜻인데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은 공백을 깬 게 아니라 깨달은 것이다. ‘그대와 나의 만남은 보배로운 약속’(송골매 ‘아가에게’ 중)이 무대에서 재현될 걸 기대하니 올 추석이 아가처럼 기다려진다. 특히 이번 공연에선 편곡을 따로 하지 않고 100% 오리지널로 관객을 만날 계획이라니 반갑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의 인상적인 기타 리프(반복하는 멜로디)를 관객들은 입으로 따라 할 수 있게 됐다. 하기야 ‘불후의 명곡’이 가끔 ‘불효의 명곡’이 되는 까닭은 원곡의 가치를 무시하고 무작정 악을 써서 망쳐버리는 우를 범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목청을 자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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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돈은 사람을 갈라서게 하지만 음악은 다시 우리를 만나게 한다. 배철수의 팬들은 오늘도 선거캠프 대신 음악캠프에 모인다. ‘하지만 시간은 정해져 있고 우리도 언젠가는 늙어 가겠지’(송골매 ‘모여라’ 중). 방송 사고로 감전된 게 1983년인데 40년 가까이 그를 지켜보니 감전이란 단어가 감탄, 감격, 감동 다음 단계라는 착각마저 든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