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속 잠시 흔들렸지만 … 끊어질 순 없는 가족애

■ 폭풍이 지나가고 댄 야카리노 지음 김경연 옮김│다봄

다가오는 위기를 가장 먼저 아는 것은 식물과 동물들이다. 그림책 ‘폭풍이 지나가고’의 앞면지에는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나뭇잎들이 나온다. 속표지에 이르면 먹구름이 지붕을 뒤덮었는데도 어린이는 느긋하게 타이어 그네를 탄다. 세 아이를 키우는 아빠는 하늘이 온통 컴컴해진 다음에야 마당에서 놀던 두 아이와 강아지를 불러들인다. 이 집의 맏이는 공부 때문에 조금 전까지 아빠와 다툼이 있었는지 뾰로통한 얼굴이다.

이 그림책은 집안에서 꼼짝 못 하고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어느 가족의 일상을 다룬다. 좁은 공간에 달라붙어 있던 아이들은 다툼을 벌이고 세찬 폭우를 받아내던 지붕에서는 물이 새기 시작한다. 길고 무료한 시간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은 예전 같으면 안 하던 일을 시도해본다. 가위로 머리카락을 직접 잘라보는가 하면 서툰 손으로 강아지를 목욕시킨다고 욕조에 들어갔다가 욕실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폭풍 때문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폭풍 때문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자꾸만 생겨난다. 상황은 거듭 나빠진다.

폭풍우를 피해서 집안으로 대피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관계를 균열시키는 마음의 폭풍은 어디로 숨을 곳이 마땅치 않다. 가족은 각자 방에 들어가 버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회피하지만 불편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가족을 다시 하나로 이어주는 건 혼자서 견디기 힘든 천둥과 번개다. 정전이 되고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워지자 가족은 상대를 찾고 꼭 끌어안는다.

작가는 폭풍에 대비하는 가장 큰 동력은 서로 믿고 힘을 모으는 일이라고 말한다. 다음에 또 찾아올 큰비를 맞이할 태도가 준비되어 있느냐고 질문한다. 뒤표지의 먹구름은 어떤 재난도 일회성이 아님을 암시한다. 채도가 높고 선이 부드러운 따뜻한 그림이지만 촌철살인의 의미가 담긴 작품이다. 48쪽, 1만4000원.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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