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곽훈, Halaayt, 145.5×112㎝. 캔버스에 아크릴, 2022.

이재언 미술평론가

하늘을 덮고 있는 갈매기들, 무언가 일어날 것만 같다. 그의 등장을 재촉하는 주술 같은 에이합 선장의 중얼거림 속에 정적이 잠시 흐른다. 그때 물기둥과 함께 거대한 고래가 물 밖으로 순식간에 솟구친다. 두려움에 떠는 선원들이 말렸지만, 원한으로 광기를 누르지 못하고 혼자 작살을 던지며 고래에게 달려든다.

영화 ‘백경’의 스릴 넘치는 장면과 울산 반구대 암각화 고래잡이 그림, 그리고 작가 곽훈의 그림이 다중으로 오버랩된다. 특히, 거대한 고래에 맞서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작살을 곧추세우는 모습은 반구대 암각화의 것과 흡사하다. 눈앞이 캄캄한 절체절명의 공포감을 혼신의 필치로 표현한 그의 화면이 압권이다.

같은 고래잡이지만 두려워하면서도 공경하는 마음으로, 특히 바다의 신을 뭍으로 모시는 경건한 의식을 수행하는 이누이트인들의 자연관에 경의를 표한다. 이름하여 할라잇(Halaayt), 그 개념을 자신의 화면에 도입하면서, 탐욕의 물질문명에 경종을 울린다. 무기력해진 영혼을 깨워주는 구도자의 일침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