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으로 폭주하는 민주당

김세동 논설위원

이재명 대표 출마는 비상식적

‘어대명’ 때문 전대 흥행 안 돼

대선·지선 패배에도 쇄신 뒷전

국회의원 이어 야당 대표 되면

방탄 갑옷 이중삼중 껴입는 셈

대표 옹위투쟁 땐 당 만신창이

큰 선거에 패배한 정당은 비상대책위원회와 전당대회 등을 통해 인물과 노선을 확 바꿔 환골탈태한다. 이게 한국 정당들이 걸어온 상식적 대처인데,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상식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민주당은 올해 3·9 대선과 6·1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패배했다. 지난해 4·7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까지 합치면 3연패다. 이런 정당이 문재인 정권 5년의 실정과 내로남불, 오만 독선에 대한 반성과 쇄신 없이 8월 28일 전당대회 당권 투쟁으로 내달린다.

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전당대회가 인물 교체와 노선 전환에 대한 기대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당이 깨질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건 대선·지선 패배의 최고 책임자인 이재명 의원의 대표 출마 때문이다. 자신들의 정권에서 임명한 검찰총장 출신 야당 후보에게 대선에서 패배한 이유가 조국 일가 비리 사태와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대변되는 내로남불, 불통, 부도덕, 무능력 등인데,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 없이 석 달 뒤 지방선거를 이재명 얼굴로 치를 정도로 상식과 양식이 없는 민주당 의원과 지지자 다수는 이번엔 아예 당 얼굴로 이재명을 세우겠다고 벼랑으로 치닫는다.

3개월 사이에 두 번 패배했으면 이재명 카드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상식인데,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이다. 도박판에서 잃을 때마다 판돈을 2배로 올리는 조폭 영화 같은 장면이다. 대선 패배 책임자가 문재인 전 대통령인지, 이재명 후보인지는 논란이 있다고 해도 지방선거 패배의 최대 책임자는 총괄선대위원장이자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가 된 이재명이라는 데 이론이 없다. 이런데도 이재명은 8월 말 전당대회 대표 경선에 나섰고, 개딸 같은 광신적 지지자들은 열광하고 있어 이변이 없는 한, 대표에 선출될 전망이다.

당 대표 선거에 박용진·강병원·강훈식·박주민·설훈·김민석 의원 등 모두 8명이 출마한 것도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을 돕는 셈이다. 반명(反明) 후보 단일화 얘기가 나오지만, 그들 간에도 이재명과의 ‘거리’가 다 다르고, 단일화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이 달라 실제 성사 가능성이 크지 않다. 일부 후보 간에 성사돼도 이재명 대세론을 꺾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97그룹을 주목하는 분석도 나오지만, 박용진 정도를 제외하곤 대부분 친문 계보로, 전 정권의 내로남불에 대동소이하게 편승해 새로운 얼굴로 평가받기 약하다.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민주당은 이재명과 한 몸이 돼 사법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이미 너덜너덜해진 민주와 진보의 가치가 만신창이가 될 수도 있다. 무리한 당 대표 출마가 사법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방탄조끼 한 벌 더 껴입기라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이미 팬덤정치에 장악된 민주당에서 큰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상호 비대위원장이 지난 20일 한덕수 국무총리를 만나 대놓고 “수사를 자제해야 협력할 명분이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이야기 잘해 달라”고 말했다. 우 위원장의 실언인지, 자신의 숨겨진 정치적 의도가 있는지 당장 알기는 힘들지만, 당 지도부도 사법 리스크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때의 검찰·경찰이 막았던 각종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하고, 조만간 속속 결과물들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 의원의 사법 리스크가 있다’는 응답이 59.2%로 나온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리스크가 없다’는 대답은 32.4%였는데, 민주당 지지층에선 그 응답이 61.2%로 나오는 등 당심과 민심의 괴리가 엄청나다. 고질병이다.

민주당은 중앙·지방 정권을 내준 지금도 ‘조국의 강’을 건너지 않고, 국민 다수가 비판하는데도 아랑곳없이 위헌·위법적으로 처리한 검수완박법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며, 취임 70여 일밖에 안 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운운할 정도로 상궤를 벗어나고 있다. 이재명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 ‘공격이 최선의 방어’ 식의 폭주가 자행될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지지율 하락으로 고심하는 정부·여당에는 호재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주요 정당들이 누가 더 못하나 경쟁으로 서로를 결과적으로 도와주는 ‘적대적 공존’의 불행한 악순환이 또 시작되려 한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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