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름알데히드 등 유해화학물질
매일 먹는 과일에도 포함
케모포비아, 노출량에 따른 인체위해성 파악 중요
의협 국민건강보호위원회-과학기자협회, 보도준칙 발표


##사과, 바나나, 키위, 파인애플...

필수 영양소와 비타민이 풍부해 우리가 매일 식사 후나 간식 대용으로 즐겨 먹는 음식들이다. 그러나 국제식품정보협의회(International Food Information Council, IFIC), 홍콩 식품안전센터(Centre for Food Safety) 등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매일 먹는 대부분의 과일에 우리나라에서 유해화학물질로 관리되고 있는 포름알데히드, 아세트알데히드, 리모넨 등의 성분이 들어있다고 한다. 우리는 주로 음식물의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나트륨 등 영양 정보를 보고 섭취하지 성분분석표의 정보까지 확인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에게 과일임을 알리지 않고 해당 성분이 들어간 음식을 먹을 수 있겠냐고 물어보면, 분명 열에 아홉은 고개를 저을 것이다.

이미지 크게보기기획기사 이미지 출처: Ingredients of an All-Natural Banana and other fruits, James Kennedy, Australia

##2013년 호주 멜버른의 한 고등학교 화학교사 출신인 제임스 케네디(James Kennedy)는 바나나의 성분정보를 활용해 만든 포스터(사진)를 소셜 뉴스 웹사이트에 올리자 각종 뉴스, 소셜미디어에서 큰 화제가 됐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천연 과일조차 수많은 화학물질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만으로 주목을 받은 것이다. 그는 바나나 외에도 복숭아, 딸기, 블루베리 등 우리가 매일 먹는 과일의 성분 분석 자료를 근거로 ‘화학물질 공포증(케모포비아, Chemophobia)’과 함께 살아가는 현대인의 사회현상을 설명했다.

제임스 케네디는 케모포비아의 요인으로 세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고도화된 독성 분석기술이 잠재적으로 유해한 독성 물질의 아주 작은 흔적도 검출할 수 있다는 점, 둘째, 생활 수준이 높아져 안전과 부작용을 더욱 고려하게 된 사회현상, 셋째,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과학적 검증이 불충분한 정보의 오남용과 공포증의 확산이다.



◇과도한 케모포비아 우려=국내 소비자들은 ‘케모포비아’ 인식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화학물질 공포증은 생활에 꼭 필요한 생활용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의협 국민건강보호위원회와 한국과학기자협회가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조사에서 소비자 10명 중 7명이 생활용품 안전성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다. 제조사가 제공하는 화학물질정보에 대한 소비자 신뢰도는 12%에 그쳤으며, 정부 관련 기관이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신뢰도 역시 39% 수준으로 크게 낮았다. 실제 대다수 소비자는 제조사나 정부 홈페이지 등 공식적 정보가 아니라 포털·블로그·지인 등 비공식적 정보 제공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매일 먹는 과일에 유해화학물질인 포름알데히드, 아세트알데히드 성분이 포함돼 있더라도, 인체에 노출되는 양이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 평가다. 그러나 전문가의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에, ‘화학물질은 무조건 인체에 유해하다’는 결론, 즉 화학물질 공포증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보도경쟁도 불안감 조성에 한몫=무분별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과학적 근거에 기반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전문가와 언론의 역할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성분 자체는 얼마나 유해한 것인지, 해당 성분에 얼마나 많이 자주 노출되어야 우리 인체에 위해한 것인지, 또 정확한 사용방법은 무엇인지 등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보들이 언론 등을 통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성분 안전성 이슈가 터질 때마다, 비과학적 정보에 근거한 언론의 불안감 조성, 사건 위주의 보도 경쟁으로 인해, 불안감만을 키워 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의사협회는 관계자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성분 안전성 이슈 초기단계에 정부와 소비자에게 의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진단과 위해소통의 역할을 해줄 전문가의 입장 전달, 그리고 이러한 명확한 사실에 기반한 언론의 신속한 보도가 중요하다"며 "그래야 소비자들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해당 제품이나 물질이 우리 몸에 위해한지 아닌지를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협·과학기자협회, 환경 및 생활용품 안전성 보도준칙 발표= 언론과 의과학 전문가들 모두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해결 열쇠를 내놓지는 못해왔던 상황에서 케모포비아 인식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와 한국과학기자협회는 화학물질의 안전성에 대해 명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소비자들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화학물질의 안전성을 판단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환경 및 생활용품 안전성 보도준칙’을 공동으로 발표하고 의과학 전문기자 및 언론사에 보도준칙의 준수를 권고했다.

보도준칙안은 소비자들의 화학물질 공포증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기대근거는 코로나19 발발 직후인 2020년 4월에 발표된 ‘감염병 보도준칙’이다. 감염병 보도준칙은 2009년 신종 플루와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 과장 혹은 추측 기사가 난무했던 상황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판단 하에 만들어졌다. 감염병 보도에 심층성과 객관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했고, 자극과 과장될 수 있던 감염병 보도의 흐름을 안정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현재 보건복지부의 감염병 관련 보도자료에 항상 별첨으로 추가되고 있기도 하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얼핏 보면 화학물질로 가득한 바나나도 안심하고 먹듯, 소비자들이 생활용품 속 화학물질도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인체 위해성 유무를 판단하고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용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