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 일베들의 시대 김학준 지음│오월의봄

단순한 악마화로 기울지 않고 빅데이터·심층 인터뷰로 재구성
‘일베적 사고방식’이 주류로 부상… 사회구조 조망 필요성 제시

이미지 크게보기 게티이미지뱅크.

“일베 이용자들은 ‘루저-백치-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이다. 착취와 피해 책임을 사회적 약자에게 돌리는 일베의 모습은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보편 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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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비평가 박권일은 2013년 한 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진보논객 진중권이 제기한 ‘일베 루저론’을 이렇게 반박했다. 박권일의 주장은 극우성향 커뮤니티인 일베를 ‘악마화’하거나 루저로 ‘폄하’하지 않은 최초의 논의로 주목받았다. 사회학 연구자 김학준이 쓴 ‘보통 일베들의 시대’는 이런 균형적 시선을 이어받아 일베에 관한 폭넓은 양적·질적 분석을 수행한 인류학 보고서다. 2014년 화제를 모은 석사 논문을 전면 보완한 책은 일베 게시물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과 유저 심층 인터뷰를 통해 불안하고 우울한 청춘들의 뒤틀린 자화상을 그려낸다. 사회학 석사 취득 후 서울시청 빅데이터 분석 요원을 거쳐 LG CNS에서 일하고 있는 저자는 패륜적 혐오표현의 원인과 양상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일베의 문제는 결코 일베만의 문제가 아님”을 실증한다.

2011년 5월 첫 게시물이 올라온 일베는 1990년대부터 이어진 사이버 문화 전통을 나름의 방식으로 발전시킨 커뮤니티다. ‘한국형 밈’의 기원인 딴지일보식 패러디, 유머와 드립으로 낄낄대는 디시의 유희 정신에 거침없는 정치적 발언까지 더해 강력한 ‘온라인 진지’를 구축했다. 문제는 제한 없는 자유를 추구하는 ‘표현의 유토피아’에서 민주사회가 용납하기 힘든 선을 넘는 게시물이 쏟아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저자가 2011년 5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총 77만여 건의 게시물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제목에 명백한 혐오 표현이 담긴 글은 20.1%인 15만5000여 건에 달했다. 혐오 표현의 ‘타깃’은 주로 호남과 여성, 진보좌파다. 저자는 “일베적 혐오는 ‘한국사회를 분열시키는’ 내부의 타자들을 향하고 있다”며 “일베를 (바깥 세상에 빗장을 걸어 잠그는) ‘극우주의’ 선상에 두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혐오 발화의 바탕에 깔린 심리는 무엇일까. 저자는 10명의 일베 이용자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2030 남성인 이들은 예상외로 대단히 친절하고 공손했다. 과격한 발언을 삼가며 “일베 이용자들이 다 나쁜 것마냥 매도당하는 게 억울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오늘을 사는 ‘보통의 청춘’이 그렇듯 이들도 더 좋은 학점과 스펙을 위한 자기계발에 몰두하고 있었다. ‘취업과 가정 꾸리기’라는 지극히 소박한 목표를 갖고 있음에도 ‘평범’이 ‘도달 불능점’이 돼버린 환경 탓에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짱돌을 들라”고 촉구하는 586 기득권을 향해선 “열심히 사는데 왜 인정하지 않느냐”는 불만을 드러냈다.

문제는 평범함을 추구하는 각자도생의 윤리가 능력주의와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일베 유저들은 ‘밑바닥 인생’이라고 자조하면서도 승자를 물신화하고 패자를 멸시하는 이데올로기를 체화했다. 고통을 알아달라고 징징대는 것은 스스로가 약자임을 자임하는 꼴이며, 책임은 ‘자기경영’에 실패한 개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불안이 분노로 ‘표출’되면 (세상을 바꾸는) 저항으로 이어지지만, 수치심과 무력감으로 ‘침잠’하면 순응을 낳는다”는 사회학자 시어도어 켐퍼를 인용해 “순응을 택한 이들의 ‘응어리진 분노와 냉소’가 혐오로 일그러진 공간이 일베”라고 분석한다. “순응하는 이에게 ‘복’이 있고, 참는 자에게 ‘차례’가 온다는 믿음은 ‘나는 참아냈는데 너는 왜 떼를 쓰느냐’는 억압을 정당화한다.”

책은 이 같은 ‘일베적 사고방식’이 어느새 주류로 부상해 정치·사회적으로 전면화됐다고 진단한다. 20대 남성의 페미니즘 백래시, 일베 언어를 정치적 전략으로 흡수해 국민의힘 대표가 된 이준석 등의 사례는 “일베적 멘털리티가 더 이상 사이버공간 속 하위문화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처럼 한국사회가 품은 문제의 ‘원인’이 아닌 ‘보편적 증상’이 일베라면, 유저 개개인에 대한 비난을 넘어 사회구조를 조망하는 시야가 절실하다. 저자는 새로운 도덕의 단초를 능력주의가 아닌 ‘평범함의 다변화’에서 찾으며 구성원들이 각자 목표대로 평범해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어떠한 연대도 형성하지 않는 모니터 앞의 ‘차가운 열광’이 아니라 타자를 향한 공감과 연민이라며.

일베라는 ‘문제적 집단’을 통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평가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지만, 지적하고 싶은 부분도 없지 않다. 우선 악랄한 혐오에 대한 단호한 비판과 평범한 인간의 얼굴을 지닌 개별 이용자를 향한 이해가 충돌하면서 논점이 다소 흐려진 느낌이 든다. 아울러 일베 유저로 2019년 ‘진상 손님’을 잔혹하게 살해한 모텔 종업원 장대호의 사례를 길게 서술한 것 역시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장대호가 교도소에서 쓴 글이 일베의 전형을 명확히 보여준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저자 스스로 우려하듯 ‘일베를 하는 흉악범’을 약 30쪽에 걸쳐 소개하는 것 자체가 ‘일베는 보통 사람이 아닌 괴물’이라는 통념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384쪽, 1만90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