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표준’으로 건설된 도시 … ‘여성 시각’으로 담아낸 청사진

■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 레슬리 컨 지음│황가한 옮김│열린책들

도시가 얼마나 여자에게 불편한지 고발하는 책처럼 보인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여성주의적 시선에서 바라본 도시’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도시에 대한 상상을 ‘여성의 경험’을 중심으로 완전히 새롭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와 효용을 더하는 책이라서다. 성희롱과 임금 격차, 그리고 유리 천장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고층 빌딩 그 자체에 물을 수는 없다. 따라서 책은 도시 건설에 반영되는 ‘사회 규범’에 주목하는데, 그중 가장 뿌리 깊은 것이 성차별이다.

페미니스트 지리학자인 저자는 자신이 겪은 경험과 남성 중심의 도시가 여성의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풀어낸다. 도시의 자유를 만끽하고팠던 젊은 여성, ‘공공의 몸’이 된 임산부, 유모차를 끄는 엄마 등 저자는 자신의 생의 주기와 지역에 따라 사유하고 감각한 ‘남성 도시’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여성의 입체적인 삶을 기준으로 공간을 다시 본다는 점에서 흥미롭지만, 구체적인 사례보다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용어, 이론이 빼곡해 다소 어렵게 읽히기도 한다. 예컨대, 임산부가 된 후, 도시의 ‘공공재’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고 회상하는 챕터에서 저자는 발터 베냐민이 현대적인 도시인상(像)이라고 말한 소요객(逍遙客·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니는 사람)의 개념을 가져온다. 그리고 런던 거리를 걸으며 큰 즐거움을 느꼈다고 술회한 버지니아 울프를 ‘여성 소요객’의 존재 근거로 제시하는 이론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요객의 전제가 익명성, 비가시성이라고 할 때 임신한 여성이나 유모차를 끄는 여성은 결코 ‘소요객’의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없음을, 여성을 고려하지 않은 공간 구성과 시선의 폭력성을 지적한다. 제인 다크가 말했듯, 도시는 결국 “돌, 벽돌, 유리, 콘크리트로 쓰인 가부장제”로서 작동한다면서.

도시는 여성의 두려움, 불편, 차별 등을 거의 만날 일이 없는 남성의 경험을 ‘표준’ 삼아 설계됐고, “남성의 전통적인 성 역할을 뒷받침”했고, 여성에게 ‘소요객’의 신분을 온전히 부여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이것. ‘소요객’의 권리를 모두에게 어떻게 공평하게 누리게 해 줄 것인가. ‘여자 도시’의 출발은 여기서부터고, 이것이야말로 ‘남성 도시’로는 한계에 다다른 지금의 도시가 염원하는 미래 공간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줄 것이다. 304쪽, 1만8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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