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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김월회의 지식카페 - (15) 여성과 정치

- 여웅의 ‘여선외사’

‘영락제 황위 찬탈’ 징벌 전투
주요 장수 모두 평범한 여성
전장서 출산하며 승리 이끌어
명사들 책 추천하며 격한 호응

15세기 초엽, 힘센 숙부가 어린 조카의 황위를 찬탈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명의 3대 황제 영락제 이야기다. 그는 수년에 걸친 전투 끝에 조카 건문제를 죽이고 황제 자리를 꿰찼다. 그러나 앞길이 순탄치는 않았다. 수년간 치렀던 전투의 후유증도 컸고 자연재해도 반복됐다. 백성의 생활은 갈수록 피폐해졌고 급기야 민중 봉기가 일어났다.

인천과 마주 보는 지역인 산동(山東)성에서도 반란이 일어났다. 자못 주목할 만한 반란이었다. 반란군의 수장이 평민 출신으로 ‘불모’(佛母)라고 불리는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불모는 석가모니의 모친이라는 뜻이니, 불교 신자에게는 천주교의 성모 마리아에 해당하는 영향력을 지닌 존재였다. 그래서였을까. 반란군의 초반 기세는 등등했다. 산동성의 중요 거점을 차례로 점령해 갔다. 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결국 영락제가 파견한 군대에 의해 진압당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 반란군의 수장이었던 여인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다. 불모라 불리던 ‘당새아’란 여성 지도자 말이다.

신기한 일이 300년가량 흐른 18세기에 또 발생했다. 사라졌던 당새아의 이름이 다시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전에는 반란을 이끈 실존 여성 지도자로서 그 이름이 퍼졌다면 이번에는 소설 속 여성 장군으로 등장했다. 여웅이라는 무명 서생이 지은 ‘여선외사’라는 장편 대작 속에서의 일이었다. ‘여선외사’에서 ‘여선’(女仙)은 여성 신선이라는 뜻으로 주인공 당새아를 가리킨다. 소설에서 그녀는 달의 여신인 항아의 화신이었다. ‘외사’(外史)는 역사의 바깥, 그러니까 정식 역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다룬 사건의 원형은 300여 년 전 당새아가 일으킨 실재했던 반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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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의 반란 동기는 민중의 생활고가 아니라 영락제의 황위 찬탈이었다. 명 조정의 정통성은 건문제에게 있고 영락제는 불법으로 황위를 찬탈한 역적인 만큼 ‘역적 영락제’를 토벌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새아 진용의 지휘부가 사뭇 예사롭지 않다. 주요 장수가 모두 여성이다. 당새아는 선계에서 억울하게 죄를 짓는다. 그러자 옥황상제는 인간계로 내려가 영락제의 황위 찬탈이란 잘못을 바로잡음으로써 속죄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에 평민으로 환생했고, 같이 환생한 선계와 마계 출신 여성 장수들의 도움 아래 영락제를 진압함으로써 상제로부터 받은 미션을 완수한다.

그렇다고 당새아군의 주요 장수 모두가 선계와 마계 출신인 건 아니었다. ‘여선외사’의 여성 장수들은 주로 평범하거나 비천한 신분 출신이었다. 당새아의 군대에 합류함으로써 난생처음으로 칼과 창을 들게 된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당새아의 지휘 아래 장장 20여 년 동안 지속된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내는 여성 영웅으로 거듭났다. 가정이나 결혼, 임신 등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전장에서 출산한 뒤 바로 전투에 임했고,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치자 자기 몸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도 한다. 정절을 잃었다며 목숨을 끊는 행위를 어리석은 짓이라고 질타한다. “여성에 의한 현실의 전복”이 통렬하게 상상된다.

‘여선외사’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제법 뜨거웠다. 당시 문단 명사 여럿이 추천서를 쓰는 등 지식인 사회가 호응했고 판매량도 쏠쏠했다. 바다 건너 조선에서는 3종의 언해본이 나올 정도였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반응이 뜨거웠다고 해서 실제 여성의 삶과 사회적 위상이 나아진 건 아니기에 하는 질문이다.

다가올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거대 양당의 광역지자체장 후보 34명 중 여성은 단 3명이다. 당연히 정당한 절차를 밟아 선출된 후보이리라. 그럼 아무 문제도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정당한 절차를 밟은 결과가 이렇듯 기울어진 남녀 비율을 야기했다면 혹 절차 자체가 기울어져 있다거나, 그러한 절차가 유리천장이 두껍게 쳐져 있는 기울어진 환경을 도외시한 것은 아닐까. 여성을 향한 구애는 선거철마다 거듭되지만 유리천장 없는 여성의 삶은 허구의 영역에서 여전히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