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조정신청뒤 법원에 소송장
단가조정실패로 계약포기 사례도
수·위탁분쟁 조정합의 나왔지만
코레일 “기재부 유권해석 필요”


글로벌 원자재 가격 급등 영향으로 중소기업들이 기존 납품 계약에서 추가 단가 인상을 요구해 공기업과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법적 분쟁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중소기업들의 납품단가 보상 요구를 회피하거나 분쟁 조정 합의서 등을 수용하지 않자, 중소기업은 기존 납품 공급 계약을 포기하거나 법적 공방을 준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국가계약법상 ‘에스컬레이션’(물가변동과 계약금액을 연동하도록 하는 제도)이 있지만 유명무실하다며 보완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9일 문화일보가 코레일에 납품하는 중소 전력 기자재 제조업체 A사로부터 입수한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의 ‘수·위탁분쟁 조정합의서’를 보면, 재단은 ‘2020년 12월 21일 체결한 트롤리 선(전동차 등과 같이 전동기를 보유하는 이동기기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접촉 전선) 단가계약과 관련해 코레일이 A사에 2022년 4월 30일까지 3721만276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지난달 결정했다.

하지만 코레일은 관련 서류 미제출과 납품 대금 완납 등의 이유로 조정 합의안을 거부했다. A사는 코레일이 에스컬레이션을 위배했다고 보고 소송을 제기했다. 코레일에 납품하는 또 다른 중소기업 B사는 납품단가 조정 실패로 기존 부품 공급 계약을 포기했다. 에스컬레이션은 입찰일을 기준으로 90일 이후 품목조정률이나 지수조정률이 3% 이상 증감된 때 계약금액을 조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코레일 관계자는 이에 대해 “A사의 경우 일부 유권해석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 기획재정부에 요청했지만, 아직 답이 오지 않아 조정 안을 거부했다”며 “납품대금 지급이 완료된 사항에 대해 사후에 납품대금을 증액하는 것은 국가계약법 ‘물품구매(제조) 계약 일반조건’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홍성규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코레일 이외에도 발전 공기업도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납품단가 현실화를 외면하며, 각종 서류를 요구하는 등 시간을 끌면서 에스컬레이션을 회피하고 있다”며 “앞으로 분쟁 건수가 더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홍 이사장은 “납품단가 인상이 원가에 반영되지 않으면 중소기업 대부분이 크게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들은 에스컬레이션이 현장에서는 전혀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중기중앙회가 중소기업 304개사를 대상으로 긴급 실태 조사를 한 결과, 원자재값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전부 반영받는 중소기업은 4.6%에 그쳤다. ‘대·중소기업 납품단가 조정위원회’가 지난 2020년 5월 출범했지만, 현재까지 조정 요청 건수는 1건도 없다. 배조웅 대·중소기업 납품단가 조정위원장은 “공기업, 대기업과의 납품단가 현실화는 중소기업이 기업의 명운을 걸고 나서는 최후의 수단”이라며 “자발적인 상생 문화가 정착될 때까지 법으로 규정하는 납품단가 연동제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철·최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