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봄을 알리는 모습이 색색의 꽃만은 아니다. 도심 빌딩 외벽에 매달려 겨우내 찌든 유리창의 때를 벗기는 이들 또한 봄의 전령이다.

서울시내 한 호텔 건물의 외벽을 청소하는 인부들이 밧줄에 몸을 의지한 채 작업을 하고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촬영노트

얼마 전 24층 고공 외줄 타기를 했다. 고층빌딩 청소하는 모습을 빌딩 안에서 밖으로 내다보는 건 재미없고…로 시작한 부장의 주문이 결국 날 외줄에 매달아 놓고 말았다. 밧줄이라고 말하는 외줄에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도심의 고층빌딩을 닦는 사람들…그 사람들은 그게 가장 편하고 좋다고 한다. 난 한 번 타고도 팔다리가 후들거리는데 그 사람들은 며칠 밧줄을 안 타면 몸이 근질거린다고. 많은 생각을 했다. 엉덩이를 겨우 걸칠 수 있는 판때기 하나 그리고 손목 반만 한 굵기의 로프 하나. 아래 인간들이 개미보다 쪼끔 작아 보인다. 나도 저렇게 꼼지락대며 살았고 살고 있겠지. 가끔 시원한 바람이 부는데 눈앞에 아지랑이가 생긴다.

<중략>

내려갈수록 로프 반동이 커진다. 내려오는 15분이 하루는 된 것 같았다. 중간에 까진 정강이가 아직도 시큰거린다. 20여 년 전 취재노트 중에서.

곽성호 기자 tray9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