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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김영옥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이미지 크게보기 주철환 프로듀서·작가·노래채집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음악 이야기. 오늘은 번안동요로 시작한다. ‘깊고 깊은 산골짝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금을 캐는 아버지와 예쁜 딸이 살았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호적상 딸의 이름은 일치하는데 아버지는 주소가 두 군데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광부냐 어부냐, 뭐 이게 중요한 건 아니다. 아이들이 공감하기엔 다소 버거운 단어가 하나 등장하는데 그게 바로 ‘영영’이다. 가출한 게 아니라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고 암시한다. 노래방 애창가요인 나훈아의 ‘영영’에서도 ‘영원히 영원히 네가 사는 날까지/ 아니 내가 죽어도 영영 못 잊을 거야’라며 죽음이 갈라놓는 이별을 아쉬워한다.

‘목로주점’으로 유명한 포크가수 이연실은 ‘클레멘타인’과 동일한 멜로디를 노래하면서 시점을 딸로 이동했다. ‘엄마 엄마 나 죽거든 앞산에 묻지 말고/ 뒷산에도 묻지 말고 양지쪽에 묻어줘.’ 원곡이 아빠의 비통한 심정이라면 ‘엄마 엄마’는 딸의 애끓는 유언(?)을 가사에 담았다. 이상하게도 1970∼1980년대 대학가 회식자리에선 이런 구슬픈 노래가 유령처럼 밤을 누볐다.

잠시 시인의 마을로 발걸음을 옮기자.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중략) 이 거짓의 거리에서 숨결 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마지막 줄에 가서야 비로소 시의 제목이 장엄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1960). 생명파 시인으로 불리는 청마 유치환(1908∼1967)의 작품이다.

때맞춰 음악동네엔 뜨거운 노래를 합창하는 프로가 탄생했다. ‘뜨거운 씽어즈’(JTBC)가 가슴의 온도를 높인 건 배우 김영옥(1937년생)과 나문희(1941년생)의 공이 절반이다. 이 두 분은 MBC가 개국(1961)할 때 성우 동기로 연을 맺었다. 2004년 2월에 김영옥을 만나서 반나절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이 먹으면 좋은 게 뭐냐고 슬쩍 물었다. “나이 먹으면 점쟁이가 되는 것 같아요. 사람을 보면 음, 어떤 사람이겠구나 하고 제법 맞힌다니까요.” 노역을 주로 하다 보니 죽음에 이르는 역이 많았다. 2003년에만 6번이나 죽었다. “사람들이 ‘잘 죽는다’고 말할 때 기분이 묘하죠.” 그녀가 직접 본 어머니의 마지막 장면은 ‘의연함’이었다. “죽음을 흉내 낼 수는 없죠.” 관록의 배우가 이렇게 말할 때 내겐 ‘페이터의 산문’(이양하 번역) 중 일부가 퍼뜩 머리를 스쳤다. “너는 마치 그들이 영원한 목숨을 가진 것처럼 미워하고 사랑하려고 하느냐? 얼마 아니 하여서는 네 눈도 감겨지고 네가 죽은 몸을 의탁하였던 자 또한 다른 사람의 짐이 되어 무덤에 가는 것이 아닌가?”

새 프로에서 김영옥은 자기소개 곡으로 죽음과 관련된 노래를 골랐다.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천 개의 바람이 되어’ 중). ‘클레멘타인’이나 ‘엄마 엄마’와 달리 이미 세상을 떠난 자의 육성(영성)이지만 원망이나 절망이 아니라 소망과 희망을 담백하게 노래한다.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줄게요/ 밤에는 어둠 속에 별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 참고로 원곡(미국 장송곡)의 배경은 사진이 아니라 무덤 앞이다(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2009년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이는 팝페라가수 임형주다. 그해 세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곡으로 부르기도 했다. 봄날은 오고 봄날은 간다. 봄바람에 마음이 산란할 때면 ‘페이터의 산문’에 실린 호머(호메로스)의 시로 마음을 다잡자. ‘사람은 나뭇잎과도 흡사한 것/ 가을바람이 땅에 낡은 잎을 뿌리면/ 봄은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