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병종, 무제, 종이에 먹과 채색,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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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종의 시화기행 - (108) 밀라노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下)

죽기 전 예수와 제자들의 식사
마른 빵·포도주가 전부인 식탁
이별 앞두고 행한 ‘마지막 의식’

양식을 통해 삶을 찾으라던 예수
다빈치 그림서 의미 충실히 전해

택시는 나를 남부 이탈리아의 소도시쯤 생각되는 곳에 내려준다. 똑같은 밀라노인데 임마누엘 2세 명품 갤러리가 있는 쪽과는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조금 전까지 눈앞에 펼쳐지던 거대도시는 썰물처럼 사라지고 산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은 고요한 마을 하나가 나타난 것이다. “이 작은 읍(邑) 같은 곳에 ‘최후의 만찬’이?”, 싶었는데 여행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다. 아마 나처럼 그 그림을 찾아온 길일 것이다. 오직 오래된 하나의 그림을 찾아 수고를 마다치 않고 찾아온 사람들. 마치 멀리 사는 지인을 만나보러 오는 것처럼 정겹지 않은가 말이다. 더구나 그 그림은 미술관이 아닌 성당 벽에 그려져 있다. 사실 한 공간 안에 몰아넣은 무더기 그림을 싫증 나도록 보아야 하는 것은 고역이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작품에 대한 모독이다.

늙은 수녀가 주인인 기념품 가게를 거쳐 빙빙 돌다가 드디어 티켓을 받고 가슴 두근대며 최후의 만찬 앞에 모여든 사람들 속에 섞여 선다. 그런데 그림은 그 크기가 예상 못할 만큼의 대작이다. 사실 하도 인쇄물이나 화집에서 많이 보았던 그림이어서 그 실제 크기에 대해서는 무심했는데 통째로 벽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더구나 캔버스와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벽이 그림이 돼 다가오며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다. 분명 식사 자리인데 비장하고 거룩하고 우아하고 슬프다. 여러 차례의 수복과정을 통해 색채와 형상들은 이제 거의 원모습을 되찾은 듯했다.

그런데 너무도 익숙해진 그 최후며, 만찬이라는 표현이 좀 불편해진다. 우리네 식으로 말한다면 만찬이란 한 상 그득히 먹는 일이다. 그러나 식탁은 지나칠 정도로 조촐하다. 마른 빵에 포도주가 전부. 스승은 그마저 당신의 몸이고 피라고 가르치고 있다. 라스트 서퍼, 그냥 마지막 식사라고 하는 편이 그림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이별의 저녁 식탁에 최후의 만찬이라는 거한 제목을 붙인 것은 아마도 일본어 번역 과정에서 비롯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정해본다. 예수께서는 저 마지막 지상의 양식을 통해 천국의 메시지를 전하고 계셨다. 이제 나를 육신으로는 더 이상 보지 못하리라는 예시였고 그러나 볼 수 없더라도 나는 존재한다는 예표였다. 부활 후 디베랴 바닷가에서 이뤄진 것도 역시 가난하긴 했지만 함께 식사하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모든 ‘함께 먹는 일’은 그 자체가 의식이다. 우리는 흔히 “언제 식사나 한번” 식으로 가볍게 이야기하지만 어느 날 문득 그 일상처럼 하던 식사가 불가능해지는 때가 오리라는 것은 잊고 산다. 예전에 눈시울 뜨겁게 읽은 한 권의 책이 생각난다. ‘내 생애 마지막 식사’.

그 책에 대해 나는 언젠가 한 지면에 대충 아래와 같은 서평을 썼던 적이 있다.


‘내 생애 마지막 식사는 ‘등대의 불빛’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독일 함부르크의 한 호스피스동의 요리사 루프레히트 슈미트에 대한 다큐 형식의 기록이다. 그는 모든 요리사가 꿈꾸는 일류 호텔 주방장 자리를 나와 이 호스피스동에서 최고의 요리를 선보이는데 생의 마지막 촛불이 깜박거리는 임종 환자들의 처소인 그곳에서 정성을 다해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주문을 받아 마지막 만찬을 준비한다는 내용이다.

임종을 앞둔 이들의 ‘먹는다’는 행위는 건강했던 시절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때로는 주문을 받아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가져가면 이미 죽음의 길로 떠난 이들도 있고, 막상 입에 넣어도 한 숟갈도 못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사 루프레히트는 그야말로 하나의 종교적 의식처럼 혼신을 다해 그들 각자의 마지막 식사를 준비한다.

요리사가 “어떤 음식을 드시고 싶으세요?” 하고 물을 때 병상의 환자는 짧은 순간에 지나온 삶의 수많은 장면을 반추한다. 음식과 함께 떠오르는 생의 그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들을 상상한다. 마지막 식사는 그래서 지상의 일생을 축약하는 일이 된다.

좋아하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었던 그 영롱한 순간들의 기억을 되살리며 그대로 스르르 눈을 감는다. 먹고 싶은 음식을 떠올리면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 희미한 미소 속에 눈을 감는 것이다. 결국 호스피스동의 임종 환자들이 맛보고 싶은 것은 가버린 시간과 그 기억이라고 하는 것을 요리사는 알게 된다.

그 흘러가 버린 시간 속에 녹아 있는 사랑과 우정과 그리움을 되살려주기 위하여 그는 임종 환자가 입술을 달싹여 주문한 음식을 그토록 정성을 다해 만드는 것이다. 먹지 못하리라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식사는 그저 함께 밥을 먹는다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추억을 먹고 사랑을 먹고 우정을 먹으며 시간을 함께 먹는 일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김병종 화가, 가천대 석좌교수

예수께서는 죽음을 앞두고 다른 무엇보다 제자들과의 한 끼 저녁 식사를 챙기신 것이다. 이별을 앞두고 행해지는 저 마지막 만찬은 그래서 식사라기보다는 예배였다. 진실로 마지막 식사는 지상에서 스승과 마지막으로 드리는 죽음의 제사였다.

그림은 여러 번의 복원을 거쳤기 때문에 얼마만큼이나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스승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앉은 인물마다 그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다중 인물의 성격을 드러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그림의 뛰어난 점은 무엇보다 화가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성품을 특정하며 불러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식탁이나 식기 혹은 식사 자체도 이 작품에서는 무대장치를 위한 소품일 뿐이다. 자, 장차 스승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왜 스승은 빵은 자기의 몸이요 포도주는 피라는 끔찍한 말을 하는 것일까. 자기가 가는 길은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뜻은 무엇이며 그 간다는 곳은 또 어디인가. 그가 떠난다면 모두 다 버려두고 대책 없이 그를 따르던 우리는 어찌 될 것인가와 같은 불안과 분노, 안타까움과 의심 같은 것이 식탁을 중심으로 하여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어쨌거나 성당을 떠나오면서 결심 하나를 하게 된다. 결단코 앞으로 대충 때우는 식사는 하지 않으리라. 거하게 때려먹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매일의 양식을 매일의 의식을 치르듯 그렇게 먹어보리라는 결심. 함께 먹는 이의 눈도 바라보며 주의 깊은 대화를 나누며 먹어보리라는 것이다. 예수는 일용할 하루치의 양식을 통해 하루의 삶을 먹으라고 권했다. 그렇다. 누구나 식사를 통해 자신만의 삶을 먹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은 그 메시지를 충실히 전해주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삶의 매 순간 이 풍부한 햇빛으로 빛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라도 언젠가는 황량한 어둠과 이리의 격렬한 울부짖음이 있는 골고다로 가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함께 하는 이 식사를 기쁨으로 맞으라. 어느 날 더는 먹지 못하는 날이 닥칠 것이기 때문에. 그림은 내게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화가, 가천대 석좌교수

이미지 크게보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 ‘최후의 만찬’.

■ 최후의 만찬은…

2번의 대홍수·2차대전 폭격때도 살아남은 다빈치의 대표작

최후의 만찬은 이탈리아의 천재 미술가이자 과학자, 음악가, 조경학자, 그리고 사상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대표작 중 하나다. 유채와 템페라 기법으로 그려진 이 작품은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벽에 그려져 있다.

크기 460×880㎝의 대작으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있기 전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 장면을 그린 것이다. 신약성서 요한복음 13장 22절부터 30절에 이르기까지의 장면을 토대로 그린 작품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출발이라고 명명되기도 한다. 여러 번의 복원 작업을 거쳤다. 기존의 방식을 뛰어넘어 작가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다차원 시점과 원근법을 사용하고 있다.

1500년과 1800년쯤 밀라노 대홍수로 벽이 침수되면서 심각하게 손상되기도 했고 나폴레옹 군대가 밀라노를 침공했을 때 벽에 그려진 얼굴들은 사격 실습용 표적으로까지 사용됐다고도 한다. 1943년 2차 세계대전 때는 폭격을 당해 벽화가 그려진 식당 전체가 무너졌으나 다행히 그림은 살아남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 작품에서 신성(神性)의 그리스도보다는 제자들과 나란히 앉은 인간 예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를 위해 예수 배면의 후광 효과 등을 연출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인간 예수와 위대한 평범성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