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주동근 작가는 “이제 저 혼자만의 ‘지금 우리 학교는’이 아닌 것 같아 기쁘다”면서 “웹툰은 시즌2가 나오기 어렵게 끝을 맺었지만 이재규 감독의 시즌2는 개인적으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 M 인터뷰 - 넷플릭스서 한달 넘게 세계 1~3위 ‘지금 우리 학교는’ 원작자 주동근

대학생때 본 ‘28일 후’서 영감
2008년 한국형 좀비 제작 시작

수위 높다보니 독자 항의 많아
그때 포기 않고 버텨낸게 다행

학창시절땐 ‘그림 그리는 애’
잘 그리기보다는 열심히 그려

그림체가 특이해 혼자서 작업
다음 작품부턴 팀 만들까 생각

사회적 메시지 넣으렸던건 아냐
굳이 찾는다면 생존의지·협동심

스티븐 킹 작품들은 ‘취향저격’
다양한 스토리텔링 능력 부러워

넷플릭스 세계 1위의 화제작 ‘지금 우리 학교는’(지우학)은 공개 후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 3위를 지키고 있다. 젊은 배우들의 열정, 이재규 감독의 세공력이 또 하나의 K-좀비 신화를 만들었다. 원작의 힘도 간과할 수 없다. 2009년부터 연재된 원작 웹툰은 국내에선 장르조차 낯설던 한계를 깨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비판과 찬사의 한복판에서 외로운 씨름을 해온 주동근 웹툰 작가를 최근 서면으로 만났다. 그는 “13년 만에 얻은 인지도, 이제 저 혼자만의 ‘지우학’이 아닌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그리고 사진 촬영을 요청했더니 대신 ‘빼꼼, 발그레’로 쑥스러운 자아를 표현한 자신의 캐리커처를 보내왔다.

―‘지우학’이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게 2009∼2011년이다. 국내 좀비 만화의 효시라고 할 만하다. 처음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나.

“해외에선 좀비물이 나오고 있었지만 국내 좀비물은 거의 없었던 시기였다. 대학생 때 본 ‘28일 후’(2003), ‘새벽의 저주’(2004)가 꽤 충격적이고 사실적이었다. 설정을 잘하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만들어 낼 수 있겠다 싶었다. 대학 졸업 직후인 2008년 웹툰을 준비하면서 한국화된 좀비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신인작가로서 작업 환경이 열악했을 것 같은데.

“웹툰 작가 초창기였기에 원고료 이외의 수입이 없었다. 취업할 때까지 고향인 경주로 내려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반지하를 얻어 생활했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나름대로 에너지를 얻고 싶어 웹툰을 그리기 시작했다. 댓글이 많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제 웹툰을 봐준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좀비물의 특성상 수위가 높다 보니 독자 항의가 들어왔다. 그때 웹툰을 접으려고 했다. 결국 19세 연령제한을 단 채 지속할 수 있었고, 그림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그때를 버텨 내지 않았다면 지금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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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풍의 그림체와 고품질 작화로 잘 알려져 있다. 습작을 많이 하나.

“그림을 잘 그린다기보다는 열심히 그리는 편이다. 습작은 많이 하지만 원칙은 따로 없다. 마음에 들 때까지 파고드는 성격이라 처음에 많이 힘들었다. 일주일 단위로 반복되는 마감 시스템에 어울리지 않는 그림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작업 방식이 남들과는 달랐다. 선으로 그림을 먼저 그리고 그 안에 색을 입히는 방법이 아니라, 면으로 형태를 잡아가는 식으로 그렸다. 지금은 이 방법이 편해서 쓰고 있지만 남들에게 추천하기는 힘든 방식인 것 같다. 사실 전문적이지도 않고 비효율적이다. 요즘 같은 시대엔 팀을 이뤄 그린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혼자서 작업한다. 이 특이한 그림체를 남에게 맡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팀 작업이 망설여진다. 하지만 시대가 변한 만큼 다음 작품부터는 팀을 만들어 볼까 생각하고 있다.”

―처음 그릴 때부터 영상화를 염두에 뒀다고 했는데, 이재규 감독에게 특별히 요청한 것이 있나.

“이재규 감독님을 만났을 때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평소에도 감독님의 작품을 좋아했기 때문에 믿고 맡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저도 창작자지만 이 감독님도 창작자다. 이 감독님께서 궁금한 점을 물어보시는 건 제가 얼마든지 도움을 드릴 수 있지만, 감독님이 구축한 (영상) 이야기에 관여하는 건 실례라고 생각했다.”

―좀비 바이러스가 최초 발현되고 전염되는 과정이 기존 좀비물과 조금 다르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나.

“좀비물을 만들기로 정하고 바이러스에 대해서 많이 찾아봤다. 바이러스 발생 후 정부의 대처, 사람들의 반응 같은 것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어느 정도 학습된 정보가 있었다. 최초 햄스터로 감염되는 부분은 영화 ‘28일 후’의 클리셰를 비틀려고 한 것이다. 영화에선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실험용 원숭이로 인해 바이러스가 외부로 번지게 된다. 저도 비슷하게 동물로 감염되긴 하지만 웹툰의 결말은 전혀 다르다. 바이러스의 기원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가장 잘 아는 공간’이라서 배경을 학교로 설정했다고 들었다. 자신의 학창시절은 어땠나.

“‘지우학’의 학교와 제 학창시절의 학교는 닮았다. 독특한 구조에 붉은색 벽돌이 비슷하다. 학창시절 저는 그림을 좋아하는 조용한 학생이었다. ‘그림 그리는 애’로 통했다.”

―왕따 학생, 권위적 교사, 무능한 공권력 등 사회적 메시지가 스며 있는데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딱히 사회적 메시지를 넣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몰입을 높이기 위해 시대적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넣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도 메시지를 찾는다면 생존 의지와 협동심 같은 것이다.”

―‘지우학’으로 인기가 높아졌는데 웹툰 작가로서 보람과 애로사항은.

“웹툰만으로 인지도가 높은 작가도 있지만, 작품이 영상화되고 난 후의 인지도 차이는 확실히 있는 것 같다. 공포물 소재에 그림체도 호감형이 아니어서 지난 13년 동안 제 웹툰을 보는 사람들은 소수라고 생각했다. 사인회를 딱 한 번 했는데 제 줄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직업인 만큼 언제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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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학’이 지난 15일간 전 세계 1위에 오른 것에 대한 소감은.

“너무 기쁘다. 감독님과 모든 스태프, 배우들의 애정과 노력이 모여 좋은 작품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이제 저 혼자만의 ‘지우학’이 아닌 것 같아서 더욱 기쁘다.”

―극 중 ‘부산행이다’ 같은 대사는 영상화하면서 새로 추가된 대사다. 원작과 달라진 부분에 대한 느낌은.

“너무 센스 있고 좋았다. 13년 전 작품이다 보니 자칫 올드해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했다. 그러나 예고편에서 그 대사를 듣는 순간 그런 걱정을 단번에 부술 수 있었다. 캐릭터의 역할 분배가 원작과 다른 부분이 있지만 여러 가지 서사가 추가된 점이 좋았다.”

―요즘 하루 작업 시간, 작업 장소와 방식은.

“연재 기간 중엔 스케줄이 전부 같다. 눈만 뜨면 작업을 하기 때문에 따로 몇 시간이라고 정해 둔 게 없다. 졸리면 눈 좀 붙이고 눈뜨면 작업하면서 매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나마 마감한 다음 날은 아이디어 구상 겸 휴식을 취하는 편이다. 작업의 ‘루틴’은 따로 없다. 혼자 작업하는데 가끔 아내가 도와주기도 한다.”

―‘지우학’ 다음엔 ‘강시대소동’(2012∼2014), ‘귀도’(2016) 등을 연재했다. 원래 공포물 장르에 관심이 많은가.

“워낙 공포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림체가 공포물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예쁘게 그리는 게 아니어서 다른 장르에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가끔 한다.”

―지금의 아내와 2019년에 결혼한 걸로 안다.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아내도 그림을 전공한 디자이너다. 사실 미술학원에서 처음 만나 결혼하게 됐다. 그래서 웹툰 작가 이전과 이후의 제 모습을 잘 안다. 제가 힘들어하는 것도 보고 잘된 모습까지 지켜봐 준 친구이자 아내다. 연재가 시작되면 집 밖을 잘 못 나가는데 그걸 몇 년이나 같이 견디며 응원해 준 덕분에 저도 잘 버틸 수 있었다.”

―2019년부터 사이비종교 소재 ‘아도나이’를 연재 중인데… 어떤 이야기인가.

“가끔 거리를 걷다 보면 이상한 건물을 마주할 때가 있다. 건물 이름이 생소하다거나 외형적으로 이상하다거나, ‘도대체 저긴 뭐 하는 곳이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건물들이다. 그런 건물을 마주하고 상상력을 키워 나가게 된 게 웹툰 ‘아도나이’다.”

―요즘 K-웹툰의 힘이 대단하다.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우선 접근성이 너무 좋다. 접근성은 네이버웹툰을 포함해 여러 플랫폼이 잘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대중에게 한번 입증받은 원작을 바탕으로 또 다른 장인들을 만나 세계화되는데, 이 프로세스가 우리나라에 정말 잘 갖춰져 있는 것 같다. 국내에선 이미 ‘웹툰’이 인정받았지만, 세계화되려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더 남았다. 드라마나 영화가 인정을 받는 동시에 웹툰도 세계인들에게 다시 재조명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스티븐 킹 같은 진짜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다’고 한 것 같은데 궁극적인 꿈은 뭔가.

“일단 스티븐 킹의 작품들은 저에게 ‘취향저격’이다. 팬심이 묻은 꿈이다. 한 작가가 쓴 게 맞는지 모를 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썼다. 다양한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을 배우고 싶다. 원래 제 목표가 작품의 영화화였는데 ‘지우학’이 생각지도 못하게 드라마화돼 꿈을 이뤘다고 해야 할지 아직 진행형인 건지 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영화화라는 새로운 목표로 다시 한번 달려 보고 싶다.”

―‘지우학’ 시즌2 이야기가 나온다. 원작자로서 ‘지우학’ 웹툰 시즌2를 만들 계획은 없나.

“드라마는 시즌2의 여지를 두고 결말이 났는데, 웹툰은 시즌2가 나오기 어렵게 끝을 맺었다. 일본에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으로 시즌2를 예고하며 열린 결말로 맺었지만 힘들게 빠져나온 아이들의 서사가 완성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운 고난을 주고 싶지는 않다는 게 제 생각이다. 하지만 드라마로 시즌2가 나온다면 어떻게 펼쳐질지 개인적으로 기대가 크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