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 함께하는 ‘감사편지 쓰기’ 연중 캠페인
- 여성가족부장관상 박주영

To. 사랑하는 고모

내가 6세 때 엄마랑 아빠랑 이혼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거 기억해? 그때 고모가 어린애가 혼자 있으면 어떡하냐고 말하면서 나를 데리고 가서 키우기 시작했잖아. 그 덕분에 나는 더는 혼자가 아닐 수 있었어.

비좁은 마사지 가게였지만 고모와 함께 숨바꼭질을 하니까 그 작은 가게가 궁궐같이 넓게 느껴졌었지. 고모가 나를 데리고 가서 키우겠다고 결정한 게 얼마나 큰 결심이었는지 이제야 알게 됐어. 근데 어렸을 때 나는 그것도 모르고 사고만 치고 다녀서 고모 속만 타들어 가게 했었네….

그런데도 고모는 나에게 소리 한 번도 안 질렀었지. 엄마랑 아빠랑 싸울 때 났던 큰소리에 내가 트라우마가 있는 것을 알고 무슨 사고를 치든 결코 큰소리만큼은 절대 친 적이 없었어.

지금 생각해보니까 고모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가 없더라. 여자 혼자서 일하고 육아하고 청소하고 등등…. 고모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져 줬잖아. 친딸도 아닌데 말이야. 나는 고모를 만나서 글자를 배우고 대화라는 것을 알게 됐어. 또, 라면이 아닌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게 된 거 있지. 고모 덕분에 무럭무럭 잘 자랄 수 있었던 것 같아. 지금은 어엿한 고1이 됐으니 말이야.

그러고 보니 이제 고모가 곧 있으면 환갑이네…. 내 기억 속에 고모는 얼굴에 주름살 하나 없는 아가씨였어. 고모는 나 때문에 제대로 쉬어본 적도 없는데 말이야. 그래서 난 지금도 그게 너무 미안해. ‘고모가 나를 키우지만 않았더라면 고모가 좋아하는 것들을 조금이나마 즐겨볼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사는 게 얼마나 갑갑했을까 생각하니 미안하고, 또, 끝까지 나를 키워줘서 고마워. 고모가 다른 건 몰라도 내 생일을 꼭 챙겨줬던 거 말이야. 솔직히 고모 아니었으면 나는 내 생일이 언제인지도 몰랐을 거야. 왜냐하면 아무도 축하해주지도, 알려주지도 않았으니까. 근데 고모는 자기 생일은 잊어버려도 내 생일만큼은 꼭 챙겨줬지. 일부러 바쁜데도 시간 내서 놀러 가서 맛있는 것을 진탕 먹고 들어오기도 했고.

나를 사랑해줘서 고맙고 나를 골칫덩어리로 생각하지 않아 줘서 고맙고 나를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고모가 나에게 줬던 사랑 그 이상으로 사랑하고 고마워하고 있어. 어디 가서 이름을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조카가 될게. 코로나19가 끝나고 내가 취직도 하게 되면 같이 고모가 가고 싶어 했던 스위스를 가보자. 고모의 지난날들을 되돌려 줄 수는 없지만 내가 앞으로는 고모가 가는 길을 꽃길로 바꿔줄게. 그러니까 그때까지 건강해야 해.

By. 고모의 영원한 똥순이인 주영이가


* 문화일보 후원,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주최 ‘감사편지 쓰기’ 공모전 수상작.
관련문의:1588-1940 www.childfund.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