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박술녀 ‘박술녀한복’ 원장이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가게에서 진행한 현안인터뷰를 위해 자신이 만든 한복으로 갈아입은 뒤 사무실에서 나오고 있다. 윤성호 기자

■ 현안 인터뷰 - 한복인생 44년… 디자이너 박술녀 원장

中올림픽 개막식에 나온 한복
우리 고유의 화려한 한복 아냐

기모노·아오자이·치파오…
편한 전통복 있으면 나와보라
비싸고 불편하더라도 아껴야

“대선후보에 한복 협찬해달라”
한복진흥원조차 ‘공짜옷’ 취급
한평생 한 일에 허탈감 들었다

20代에 ‘이리자 명인’ 문하생
색이 예쁜 비단에 미쳐 살아와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에 한복을 입은 조선족 여성이 등장한 것을 계기로 억눌렸던 한국 내 반중(反中) 정서가 다시 분출했다. 중국 조선족 역시 한복을 입고 김치를 먹는 문화를 가진 우리의 동포다. 하지만 ‘조선족의 역사도 중국의 역사이며, 따라서 한복과 김치 역시 중국의 전통문화고 그 기원 역시 중국이었다’는 중화사상(中華思想)적 문화공정의 논리를 중국 옆에서 부대껴 온 5000년의 역사를 아는 한국인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복(韓服)은 한푸(漢服)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한복 디자이너 박술녀(65) ‘박술녀 한복’ 원장도 한복의 패권이 갈수록 중국으로 넘어가는 데 대해 경계하는 사람 중 하나다. 44년간 한복을 만들어 온 박 원장은 한복이 대중화될 수 있도록 민간과 정부가 함께 나서서 한복을 사랑해 달라고 주문했다. 박 원장 인터뷰는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가게에서 두 시간 넘게 진행됐다.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의 한복 논란은 어떻게 봤나.

“개막식에서 조선족이 입었던 한복은 따지고 보면 우리 고유의 한복이 아니다. 우선 우리 민족의 화려한 한복 색깔이 아니더라. 그냥 경복궁 앞에 가면 많이 보이는 옷과 같다. 아쉬운 것은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던 선수들이 우리만의 화려한 한복을 입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우리의 전통 한복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민간과 정부, 두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일상에서 한복을 노출하는 빈도를 높여야 한다. 개량된 모양이나 소재도 좋으니 한복을 꾸준히 생활 속에서 녹이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한복이 나오는 영화, 드라마 등을 적극 지원하면 좋겠다. 비단 한복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문화를 쌓아 올리기는 힘들지만 무너지거나 빼앗기기는 쉽다.”

―한복은 우리 것인가.

“당연하다. 재론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우리부터 한복을 좀 더 입어야 한다. 중국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이 고향인 조선족 동포에게서 들은 얘기인데 조선족은 아기들 돌잔치할 때 다들 한복을 입는다고 한다. 그분들은 아기 돌 의상을 우리 가게에서 맞춰 갔다. 그분들이 무슨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그랬겠나.”

―한복 시장에서 중국 파워는 어떤가.

“지금도 국산 비단이 대부분 중국으로 간다. 바느질도 중국에서 많이 이뤄진다. 인건비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가격 차이가 너무 크다. 이미 15년 전에 중국에서 한복을 만들어 국내에서 팔자는 제안을 많이 받았다. 그것만큼은 안 된다고 거절했다. 민족혼이 담긴 우리 옷은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지, 왜 그걸 중국에서 만들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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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은 비싸고 불편하다는 선입견이 있다.

“일본의 기모노, 베트남의 아오자이 그리고 중국의 치파오를 봐라. 세계 어느 나라에 안 불편한 전통의상이 있나. 민족의 옷이 편한 나라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 우리 의식의 문제다. 비싸고 불편해도 우리 것은 우리가 아끼고 입어야 한다. 중요한 날엔 반드시 한복을 입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한복 대중화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학교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학교에서 ‘한복은 우리나라 옷이야. 이건 우리가 지켜 가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라고 교육해야 한다.”

―개량 한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변형된 한복도 전통성을 잃지 않으면 고급스럽고 이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당히 바꿨으면 좋겠다. 외국 사람들이 경복궁에서 빌려 입고 돌아다니는 옷을 한복으로 기억한다면 서글플 것 같다. 처음에는 외국인이 입는 개량 한복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이제는 저렇게라도 입어 주는 것이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한복 산업도 타격을 받았나.

“문 닫은 한복 업체가 많다. 지금 한복 기술자도 다 사라졌다. 한복 수요가 줄어드니까 기술자들이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한다. 한복이 비싸다고만 하지 말고 제값을 쳐줘야 지킬 수 있다.”

인터뷰 도중 박 원장은 눈물을 자주 닦았다. 박 원장은 “한복 만드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어린 딸을 안아 준 기억이 없다. 한평생 나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왔는데 이젠 후회가 된다”면서 한복 사업을 서서히 정리하며 가족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많이 지쳐 보인다.

“최근에 내가 우울증에 걸렸나 싶을 정도로 많이 운 일이 있었다. 지난해 4월에 경북 상주시 한국한복진흥원 개원식을 위해 내 돈을 들여 글로벌 한복 패션쇼를 개최했었다. 최근 이 한복진흥원에서 대선후보 3명에게 한복을 입혀야 하는데 1인당 30여만 원의 대여료가 없다면서 무상으로 옷을 협찬해 달라고 하더라. 어떻게 한국의 차기 대통령 후보들에게 한복을 입히는데 그런 예산이 없다는 것인가 싶어 한심했다. 자존심 때문에 거절했다. 그랬더니 어디서 그런 옷을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근본도 없는 두루마기 옷을 후보들에게 입혀 놓고 행사를 했더라. 한복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고달픈데, 한복진흥원이라는 곳조차 한복을 그저 협찬받아 공짜로 입는 옷 정도로 생각했다니, 내가 한평생 무슨 일을 해왔던가 하는 허탈감이 들었다.”

―한복과의 첫 인연을 소개해 달라.

“나에게 한복이란 추억이다. 어릴 때 찢어지게 가난했다. 외할머니는 앞을 못 보셨다. 남의 집 씨받이로 들어갔다가 아들을 낳지 못해 쫓겨나셨다. 가난했어도 어머니는 한복을 아껴 입으셨다. 어머니가 생선 장사를 하셨는데 친척 결혼식에 가실 때면 비린내 나는 옷을 벗고 한복으로 갈아입으셨다. 그때가 8, 9살이었다. 막연하게 ‘한복을 만들고 싶다, 반짝이는 한복을 만들어서 불쌍한 엄마에게 입혀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난은 나의 스승이었던 셈이다.”

―언제부터 한복을 만들게 된 건가.

“나는 많이 배우지 못했다. 10살에 식모살이를 했고, 갓난아이 돌보는 일도 했다. 남들 중·고등학교 다닐 때 방직회사에 다녔다. 그렇게 돈을 벌어 동생들 학비를 대 줬다. 그래도 언젠가 한복을 만드는 것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스무 살이 넘어 한복 명인인 이리자 선생님을 무작정 찾아갔다. 방직공장에 다니면서 선생님이 만든 한복에 빠져 그분에게 배워야겠다는 꿈을 키웠다. 돈이 없던 어린 시절에도 선생님의 이야기나 작품이 소개된 책은 꼭 사서 모았다. 3번 찾아갔는데 다 거절하시더라. 앞으로 결혼도 안 하겠다, 한복과 살겠다고 집념을 보였더니 받아 주셨다.”

―뭐가 그토록 한복에 빠져들게 했나.

“비단이 너무 이쁘다. 비단을 보면 미칠 듯 좋다. 40년 넘게 한복을 만들었는데도 일이 지루하지 않다. 비단과 한복에 미쳐서 살아왔다. 요즘도 귀하고 색깔 이쁜 비단을 사서 모으고 있다.”

김만용 기자 my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