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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이 이제 대중문화를 넘어 ‘K-헤리티지(K-Heritage)’, 즉 전통문화로도 향하고 있다. 문화일보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함께 매주 월요일 해외에 나가 있거나 환수된 우리 문화재를 소개한다. 연재는 월별 주제에 따라 이뤄지며, 2월 주제는 ‘고려청자’이다.

문득, 미국 시카고미술관(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소장 ‘청자상감동자문 매병’(靑磁象嵌童子文 梅甁·사진·고려, 12세기, 높이 33.5㎝)을 들여다보다가 TV도 인터넷도 없이, 현실은 물론 꿈과 이상을 그림과 책, 글씨, 공예품 등에 시각적으로 펼칠 수밖에 없었던 고려 시대에 도자기라는 물건이 가졌을 위력은 지금보다 훨씬 크고 강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50년대에 유명한 동양미술 컬렉터이자 시카고미술관 유물 기증자인 초대 회장을 맡았던 러셀 타이슨(Russell Tyson·1867∼1963)이 기증했다는 이 매병은 높이가 33.5㎝나 되며, 동체가 풍만하고 입이 좁아 술이나 액체를 담는 데 사용되곤 했다. 단번에 성형해 그 실루엣이 유려하기도 하거니와 문양을 새긴 후 서로 다른 색의 흙을 메꿔 넣은 상감(象嵌) 문양이 아름답다. 기면(器面) 전체를 3등분 해 각각 세로로 길쭉한 능화형(菱花形) 프레임을 배치했는데, 그 안쪽에는 어린아이들이 대나무가 자라고 있는 정원에서 새와 나비를 쫓으며 놀고 있다. 프레임 바깥에는 운학문(雲鶴紋)을 그려 넣었다.

2차원 기면이나, 능화형 프레임은 마치 창틀 같은 경계를 이뤄 일순간 아이들이 뛰노는 깊은 마당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는데, 다시 창틀 밖으로 눈을 돌리면 무한 창공의 구름 사이로 학들이 날고 있는 것만 같다. 가로 세로가 제한된 크기의 매병이지만, 하늘이 보이는 상상 속 정원의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고려 시대 사람들에게 이 병은 그저 무엇을 담아두거나 운반하던 그릇이기만 했을까? 지금 우리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눈과 귀, 촉각을 즐겁게 하듯, 볼륨감 넘치는 넓은 화면에 이상적 상상의 공간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이 청자도 아마 쓰다듬고 들여다보고 싶은 소중한 매체였을 듯싶다.

장남원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