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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 찬가│마티 헤이즐턴 지음│변용란 옮김│사이언스북스

여성의 호르몬에 대해 언급하는 건, 과학적으로 순전한 행위인 동시에 매우 정치적이다. 남녀의 생물학적 특징과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이를 조명하는 순간 그 정보가 ‘젠더 격차’로 치환돼 언제든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늘, 그날이야?”와 같은 ‘차이’를 ‘차별’로 가져온 폭력 같은 것. 이 말은 여성을 불완전한 존재로 인식시키고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폄하한다.

이러한 가운데 과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인 저자가 행한 여성 호르몬 연구는 흥미롭고, 도발적이다. 인간을 호르몬에서 해방된 존재로 보는 일반적 합의에서 벗어나 있으며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증명해 온 과학자와 성평등을 위해 고군분투해 온 페미니스트 등 여러 집단의 심기를 건드려서다. 저자는 암컷 포유동물과 여성 사이에 호르몬과 관련된 깊은 유사성이 있으며, 우리가 여성의 호르몬에 대해 더 알아야 하고, 더 알려야 한다고 설파한다. 성차별주의자들에게 단기적 빌미를 주더라도, 여성의 호르몬과 행동에 대한 관계성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동안 변수를 통제하기 위해 호르몬 주기가 있는 암컷을 배제하고, 수컷 위주로 실험해 온 결과, 우리는 여성의 몸과 두뇌에 대해 너무 모르게 됐다. 그러면서 이른바 ‘다윈주의 페미니즘’이라는, 생리 현상을 온전히 탐구하는 새로운 유형의 페미니즘을 주장한다. “호르몬에 좌우되지 않는 여성”이 아니라, “호르몬과 함께 진화해온 여성”을 증명하겠다는 것.

책에 따르면 여성의 ‘호르몬 지능’은 그들을 최상의 선택으로 이끈다. 어느 대학에서 처음 만난 남녀에게 동침 의사를 묻는 실험을 했을 때, 남자는 4분의 3이 좋다고 했으나 여자는 단 한 명도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를 통해 저자는 ‘양육 투자 이론’을 설명한다. 자손을 낳아 양육하는 엄청난 수고를 아는 여성의 호르몬은 파트너를 고를 때 훨씬 신중하다. 가임기를 외적으로 노출하지 않는 은밀한 전략에도 호르몬이 있다.

좋은 유전자를 위해 ‘섹시남’으로 기울던 호르몬은 점차 공동 양육이 가능한 ‘안정남’에게 기울게 진화했는데, 출산과 양육 말고도 많은 걸 해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그것은 또 한 번 진화한다. 즉, 변함없이 호르몬 주기에 따른 신체·심리적 변화를 겪고, 꾸준히 가임기를 통과하면서도, 여성들은 생존과 번식을 더 이상 매력적으로 느끼지 않게 된 것. 영리한 ‘호르몬 지능’은 비혼을 선택하고 짝을 찾아도 아이를 갖지 않는다. 호르몬과 함께한 여성들의 이 지적인 행동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가장 좋은 수단을 활용해 자신의 가임력을 통제한다. 그러니 호르몬은 적이나 훼방꾼이 아니라 조력자라는 것이다.

이 조력자에 대한 정보가 많을수록 여성이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더 잘 관리한다는 게 책의 핵심 메시지다. 호르몬의 영향을 더 많이 발견할 때 여성은 몸과 정신, 사회에 대한 진보적인 견해와 통찰력을 갖출 수 있으며, 섹스, 결혼, 우정, 임신 등에 관한 선택을 앞두고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리하여 ‘과학적이고 정치적인’ 호르몬 이야기는 여성들이 독특한 인생 경험을 거치도록 인도하는 이야기가 되고, 남녀 모두에게 인간 존재의 의미를 이해하게 해주는 열쇠로 제 위치를 찾아간다. 336쪽, 2만 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