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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폐가치 하락에 특단 조치

터키 재무 “장롱속 보관 金 중
29조원 쯤 은행 유입되길 희망”
리라화 가치 절상 위해 안간힘

10년전 무역수지적자 심화때도
국민에게 金 받아 위기 타개

물가가 치솟는데 기준금리를 내리는 ‘역주행’ 정책으로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른 터키가 국민을 대상으로 ‘금 모으기 운동’에 돌입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위기를 맞아 전 국민이 동참했던 국내 금 모으기 운동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다만 터키의 비극은 이번 금 모으기 운동이 처음이 아니라는 데 있다. 터키는 지난 2012년에도 경제위기가 심화하며 한 차례 금 모으기 운동을 벌인 바 있다.

9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누레딘 네바티 터키 재무장관은 영국에서 투자자들과 회의를 열고 “국민이 가진 ‘장롱 속(under the mattress)’ 금을 은행 시스템에 끌어들이기 위한 프로그램을 확대할 것”이라며 “특히 터키인들이 집에 보관하고 있는 약 2500억 달러(약 298조7500억 원)의 금 중 10% 정도가 은행으로 유입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터키는 오는 주말 국민이 가진 금의 은행 보관을 촉진하는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 정부는 금 모으기를 통해 형편없이 가치가 떨어진 리라화의 절상을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 현재 달러당 리라화 가치는 지난해 초에 비해 반 토막 난 상태로, 국민은 화폐가치 하락에 따른 물가상승으로 고통받고 있다. 실제 터키의 1월 물가상승률은 48.7%로 200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 중이다. 터키 정부는 국민이 맡긴 금을 필요 시 달러로 바꾼 뒤 시장에 공급해 리라화 가치를 안정시킬 것으로 보인다. 리라화 가치가 상승하면 수입 제품의 가격이 낮아져 물가 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국민이 어느 정도까지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애초 터키의 경제 파탄이 ‘물가가 오르면 기준금리를 올린다’는 경제 상식에 반하는 역주행 정책으로 발생한 탓에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기 때문이다. 터키는 지난해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9월 이후 4차례나 기준금리를 인하한 바 있다. 네바티 장관의 회의에 참석했던 투자자는 FT에 “(금을 맡기면) 터키인들은 아마도 이자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나중에 돌려받을 수 있을지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경제 위기 때마다 국민에게 손을 벌리는 행태도 정부 불신을 가중하는 요소다. 2012년 터키 정부는 무역수지적자가 심화하자 국민의 금을 모아 이웃 국가에 수출해 적자 규모를 크게 줄인 바 있다. 터키에서는 결혼, 생일 등의 선물로 금붙이를 주는 전통이 있는 데다가 최근 리라화 가치 하락의 헤지(회피) 수단으로 금이 각광받으며 국민의 금 보유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