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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용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대선을 목전에 두고 원자력을 다시 활용할지 또는 재생에너지를 더욱 확대할지 대선 후보에 따라 에너지 정책이 다르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우리나라의 에너지 문제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원자력 또는 재생에너지의 선택은 전력을 어떤 에너지원으로 생산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에너지 상황은 국제 정세와 지정학적 상황 변화에 민감하며 매우 취약하다. 우리나라는 화석연료인 석탄·석유·천연가스 대부분을 어느 나라에선가 수입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의 80%는 화석연료로, 산업·수송·가정과 빌딩에서 각 용도에 따라 사용한다. 수입한 화석연료로 전력도 생산하는 우리나라는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경제이다.

새해 벽두부터 국제 에너지 시장이 불안하다. 우크라이나 사태든, 유럽에 바람이 불지 않았든, 인도네시아의 석탄 수출이 금지됐든, 무슨 이유로 원유 가격이 오르든 모두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수입하는 화석연료 가격이 오르거나, 에너지 공급 자체가 불안하게 한다. 한국 경제가 국제 에너지 상황에 취약하다는 것은 바로 지표로 나타난다. 지난 1월, 사상 최대의 월별 수출을 달성했지만, 화석연료의 가격 상승으로 에너지 수입액이 더 늘어 결국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우리의 산업 구조는 수출할 상품을 만들기 위해 거의 모든 에너지를 수입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에너지 안보의 불감증이다. 현 정부는 집권 초부터 탈(脫)원전과 탈석탄 정책을 추진하면서 재생에너지를 늘리려고 했다. 환경친화적인 전력 생산 정책을 추진했지만, 결국은 가스 발전을 많이 늘리는 것이 됐다. 국제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유럽의 불안한 가스 수급 상태가 우리한테도 불똥이 튀었다. 외신에 따르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날 전쟁에 대비해 한·중·일·인도에 양도될 가스 물량을 유럽으로 돌리는 문제를 협의했다고 한다. 당연히 아시아 가스 시장의 공급도 영향을 받고 있으며, 유럽과 일본의 가스 재고량도 많지 않아 국제 가스 가격이 높게 형성되고 있다.

정부는 유류세를 낮추거나, 전기·가스 요금의 인상을 뒤로 미루면서 국제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 5월 10일 임기가 시작되는 제20대 대통령은 야심 차게 준비한 공약과 정책을 시작도 하기 전에 에너지 안보 문제와 국내 에너지 가격의 급등으로 경제정책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현 정부나 유력 후보들은 30년 후 2050년의 탄소중립은 논의해도 당면한 에너지 안보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우리는 이미 장밋빛 공약과 청사진만으로는 집권 후 부메랑이 돼 사회적 비용을 많이 치른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장기적 목표의 설정과 국제 정세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선도하는 일도 중요한데, 작금의 우리 에너지 상황은 당장 심각해지는 에너지 안보 문제다. 에너지·자원 및 경제 안보 문제는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국가적 과제로 격상시켜야 한다. 이에 걸맞은 정부 조직의 개편과 민간부문을 포함해 우리의 역량을 총동원할 수 있는 새로운 거버넌스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려면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