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아프가니스탄에서 ‘바차 포쉬’(남장 소녀)로 살아가는 사남(왼쪽)이 수도 카불의 한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남자 아이들과 앉아 있다. AP NBC 방송

■ Global Window

남장 뜻하는 ‘바차 포쉬’ 전통
사춘기 되면 여성으로 돌아가
가부장적 문화의 또다른 폐해

여성 인권이 바닥 수준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떤 소녀들은 10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머리를 깎고 남자 성을 쓰며 살아간다.

아프간 내 가부장적 문화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전통’으로, “다음에는 아들을 낳게 해달라”는 미신에서 비롯된 행위다. 이들은 아프간 말로 ‘남장을 한’이라는 뜻의 ‘바차 포쉬’(bacha posh)로 불린다. 남장 소녀들은 레슬링 등 스포츠를 할 수 있고, 이슬람 학교(마드라사)에 다닐 수 있으며,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을 할 수 있다.

아프간 여성 언론인인 소다바 에흐라리는 CNN 방송에 “돈을 벌 수 없는 소녀들은 자신이 가족에게 짐이 된다고 믿으며 자라난다”며 “이외에도 너무나 많은 이유가 그들을 바차 포쉬의 세계로 이끈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아프간계 미국인 소아과 의사 나디아 하시미는 바차 포쉬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소설 ‘껍질을 깨트린 진주’(The Pearl That Broke Its Shell)를 써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렸다.

아프간과 같이 남성 중심적 질서가 고착화한 알바니아에서도 유사한 관습이 목격되나, 성인에 한정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다만 이 관습이 얼마나 오래됐고, 어디서 유래됐으며,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는 미궁이다. 대부분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원래의 성을 회복해 말 그대로 ‘증발’해버리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부터 2차 집권을 시작한 이슬람 무장반군 탈레반 역시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으면서 사실상 이 문제를 방치한 상태다. 1970년대에 바차 포쉬를 둔 아프간 유목민 가정과 2년 가까이 생활을 같이했던 토머스 바필드 미 보스턴대 인류학과 교수는 “아프간에서 바차 포쉬는 젠더 문제 중에서도 가장 연구가 부족한 주제 중 하나”라면서 “가족 내에서의 일인 데다, (남성으로서의) 지위가 영구적으로 유지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탈레반은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 NBC 방송 인터뷰에서 말했다.

지난달 말 노르웨이에서 서방 진영과 집권 이래 첫 대면을 한 탈레반은 이달 들어서는 6개 주 공립대의 문을 다시 열고 여학생들의 등교를 허용하는 등 유화책을 폈다. 그러나 현지 여성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대학 건물 곳곳엔 탈레반이 경비를 서고 있고, 여학생들은 학교에 하루 4시간만 머물 수 있으며 교실에서도 남학생들에게 앞자리를 내줘야 한다. 주요 대학이 있는 수도 카불 등에선 여전히 여학생 등교가 금지돼 있다. 최근 6개월 새 카불·헤라트·발흐 등 3개 도시에선 229명에 달하는 교수가 해외로 이탈했다.

여성들의 안전을 위해 온라인 헤라트 학교를 설립한 교사 안젤라 가유르는 BBC 방송에 “탈레반은 더 많은 샤리아(이슬람 율법)와 이슬람 교과목들을 정규 교육 과정에 포함시킬 것”이라며 “탈레반의 교육은 여성들에게 자유로운 선택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학교를 졸업하더라도 취직은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장서우 기자 suw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