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퀸 ‘The Show Must Go On’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 지레 답답할 거라 여기지만 은밀한 장점도 있다. 자칭 노래채집가인 나는 마스크 안에서 비밀리에 노래를 부를 수 있어 이따금 행복하다. 고성방가는 아니지만 이어폰을 끼고 저장된 노래를 선별해 감정을 살려가며 끝까지 부르면 나 자신도 작품이 되는 경지에 이른다. 오디션이 아니니 점수나 등수, 의상이나 표정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고음부분은 원곡가수에게 양보하면 된다. 이기려 하지 않고 즐기려 하니 세상이 꽃밭이다.
한 해가 저무는 이맘때면 오래전 친구도 하나둘 생각난다. ‘어디선가 같은 노래를 듣고/ 날 생각하며/ 너 역시 멈춰 있을까’(스탠딩 에그 ‘오래된 노래’ 중). 차분한 어투의 그 친구랑은 눈길에서 조동진(1947∼2017)의 노래를 한 소절씩 불렀던 기억이 난다. ‘서러워 말아요/ 꽃잎이 지는 것을/ 그 향기 하늘 아래 끝없이 흐를 텐데 (중략) 부르지 말아요/ 마지막 노래는/ 마지막 그 순간은 또다시 시작인데’(‘다시 부르는 노래’ 중).
나의 듀엣파트너 중 일부는 고인이라 가끔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기도 한다. 인생길은 짧지만 예술의 길은 길다는 자각도 더러 생긴다. 죽은 가수를 수시로 불러내 함께 노래를 부르며 걷는 게 음악동네의 초혼제다.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김소월 시 ‘초혼’ 중). 슬쩍슬쩍 춤도 추며 걷는 그 산책길이 얼마나 감사한지 나는 그 길에서 낙엽 쓸고 돈도 줍고 임도 보고 뽕도 딴다.
12월 마지막 주에 어울리는 노래로 뭐가 있을까. 지금도 뉴스를 보면 칼보다 말로 베인 상처 때문에 흘린 피가 많고 돌아보면 방역현장에선 웃음꽃보다 눈물바다가 넘쳤던 한 해였다. 그래도 이것이 끝은 아니기에 아껴둔 노래 하나를 턴테이블에 올린다. ‘쇼는 계속돼야 한다’(The Show Must Go On).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우리는 맡은 일을 한다’ 정도로 해석한다. 프레디 머큐리 생전에 발매된 ‘마지막’ 싱글이고, 게다가 음반의 ‘마지막’(12번째) 트랙이기도 하다.
이미지 크게보기 주철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두 노래엔 몇 개의 질문이 담겨 있다. 핑크 플로이드의 록오페라 ‘벽’(The Wall)에선 주인공 핑크가 자문하는 형식이다. ‘내가 너무 늙어버린 걸까/ 너무 늦어버린 걸까’(Am I too old/ Is it too late). 퀸도 노래를 통해 해묵은 질문을 내놓는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What are we living for)／ ‘우리가 뭘 찾고 있는지 아는 자 누군가’(Does anybody know what we are looking for)／ ‘더 이상 떠맡으려는 사람은 누구인가’(Does anybody want to take it anymore).
노랫말 속에 표현된 세상은 황량하고(empty spaces) 버려진 곳(abandoned places)이다. 그런 곳에선 ‘최고가 돼 제압해 버리고자’(I’ll top the bill, I’ll overkill)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어제의 꾸며낸 이야기가 죽지 않고 계속 자랄 거’(Fairy tales of yesterday will grow but never die)라고 맹신하고 있다.
한 해를 보내는 줄 착각하지만 사실은 한 해가 우리를 보내는 중이다. 거기에 무심히 떠밀리면 ‘나의 영혼은 나비의 날개처럼 덧칠해져’(My soul is painted like the wings of butterflies) 본연의 나를 잃게 된다. 작가
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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