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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김현성 ‘헤븐(Heaven)’

그 당시 지원서에 적힌 출연 동기는 대체로 두 줄이었다. 한 줄은 가수가 되고 싶어서 또 한 줄은 추억을 남기고 싶어서. 상을 받건 못 받건 추억은 남으니 절반의 소원은 이룬 셈인데 문제는 직업가수의 꿈을 못 버린 자들의 행보다. 뜻밖의 장소에서 낯익은 얼굴을 만나게 되는데 가끔은 두보의 시 ‘강남봉이구년(江南逢李龜年)’을 떠올리게 된다. 두보가 어느 날 강남(서울의 강남을 연상하면 안 됨)에서 한때 최고였던 가수(명창)를 우연히 만나는데 반가움보다는 쓸쓸함이 컸다는 내용이다. 마지막 구절에 그 심정이 스산하게 드러난다. “꽃 지는 시절에 또 너를 만나는구나(落花時節又逢君)”

꽃은 지지만 꽃은 또 핀다. 제23회 MBC대학가요제(1999) 본선 무대에 조순창(예명 도비아)이라는 스무 살 청년이 출전했다. 노래 제목은 ‘구운몽’이었다. ‘다들 나를 잡으려고 난리법석 들썩들썩/ (중략) 재미있는 세상이야/ 아직 끝나지 않았어’ 상은 못 받았지만 잠재력이 엿보여서 대학로의 작은 뮤지컬 무대에 추천했다. 한동안 소식이 끊겼는데 올해 12월에 그의 이름을 대하사극에서 보게 될 줄이야. 놀랍게도 ‘태종 이방원’(KBS 1TV)에서 이성계의 넷째 아들 방간(회안대군)으로 변신한 것이다. 수염을 붙이고 갑옷을 입어서 웬만해선 그를 알아내기 어려운데 나의 눈썰미는 용케도 그를 찾아냈고 방송이 끝나자마자 급기야는 통화까지 했다. 여전히 씩씩했고 가슴에 품은 구운몽은 지금도 진행형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홉 번째 꿈이란 7전 8기 그 다음이로구나. 그날 밤엔 나도 꿈을 꿨다.

제18회 MBC강변가요제(1997) 본선 무대에 김현성이라는 스무 살 청년이 출연했다. 노래 제목은 ‘스톱’이었고 금상을 받았다. ‘조금 느릿느릿하게/ 모자란듯하게/ 그렇게 난 살고 싶어/ 생활에 쫓기며 살아야만 하는/ 그런 삶은 싫어’ 바로 음반을 냈고 곱상한 외모로 인기 가수 반열에 오른다. 대표곡은 ‘헤븐’이다. 잘나갈 때는 몰랐는데 최근 몇 년 간 그가 출연한 일련의 프로그램을 보며 느낀 소회는 착잡하다. 순차적으로 보면 2015년 11월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JTBC)에서 ‘헤븐’을 불렀고 2017년 10월 ‘불후의 명곡’(KBS 2TV) ‘신해철편’에선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Here, I Stand For You)’를 불렀다. ‘난 바보처럼/ 요즘 세상에도 운명이라는 말을 믿어/ 그저 지쳐서/ 필요로 만나고 생활을 위해 살기는 싫어’ 2018년 4월 ‘복면가왕’(MBC)엔 ‘버섯돌이’ 가면을 쓰고 나와서 조용필의 ‘꿈’을 불렀다.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그리고 지난주(12월 13일) ‘싱어게인2’(JTBC)에서 다시 ‘헤븐’을 불렀다. ‘왜 이제 왔나요/ 더 야윈 그대/ 나만큼 힘들었나요’ ‘싱어게인’의 부제는 ‘무명가수전’이다. 김현성은 무명이 아닌데도 용감하게(무모하게?) 출전했고 히트곡을 보유한 기성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1차에서 바로 탈락했다. 고음이 비상해야 사는 노래인데 가수시절 쉴 틈 없는 혹사로 성대가 결절되고 회복이 덜 된 상태에서 부르는 그의 노래는 처음부터 불안했고 끝까지 불편했다.

음악프로지만 한편의 잔혹 드라마였고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이었다. 울고 싶은 사람은 출전자일 텐데 울음을 터트린 사람은 심사위원이었다. 한때의 우상이 무너지는 모습 앞에서 규현(슈퍼주니어)은 ‘수백 번 들었던 것 중 오늘이 가장 감동적’이라며 오열했다. 성대 결절 경험이 있는 규현으로선 남의 일 같지 않았을 터이다. 강변가요제 선배(1984년 제5회 대상)로 심사석에 앉은 이선희도 ‘그런 목 상태로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최고는 감탄을 부르지만 최선은 감동을 자아낸다. 어디서 그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김현성의 1집에 들어있는 ‘소원’을 다시 들어본다. ‘알고 있죠/ 이것이 끝이라는 걸/ 두 번 다시 볼 순 없겠죠’ 가슴 따듯한 팬이라면 노래로 화답할 것이다. ‘그댄 나의 전부/ 그댄 나의 운명/ 헤어질 수 없어요/ 영원보다 먼 곳에 우리 사랑 가져가요’(김현성 ‘헤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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