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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90여일 앞두고 ‘대통령문화…’ 펴낸 라윤도 교수

“대통령 연상 단어 물어보니
韓학생들은 독재·축재·투옥
美선 명예·존경·헌신 등 꼽아”

“결국 韓美 민주주의 차이는
대통령에 대한 인식의 차이”

"강의 중에 학생들에게 ‘대통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를 한 개씩만 말해 보라고 한 적이 있는데, 학생들이 연상해 낸 단어들은 ‘독재, 탄핵, 쿠데타, 투옥, 부정축재’ 등 한결같이 부정적인 것뿐이었어요. 그러나 같은 질문에 대해 미국 학생들 대답은 ‘명예, 존경, 사랑, 헌신, 용기’와 같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단어들이었지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90여 일 앞두고 ‘대통령문화와 민주주의-미국 13개 대통령도서관을 찾아서’를 최근 펴낸 라윤도(68·사진) 건양대 명예교수. 그는 9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결국 한국과 미국 민주주의의 차이는 바로 대통령에 대한 인식의 차이"라면서 " 부정적 인식이 팽배한 대통령문화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승만·박정희 두 전 대통령은 하야와 망명, 부하의 총격을 받는 등 비극적인 생애를 맞이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으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최근 별세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과 관련해 재판정에 불려 다니다 국립묘지에 안장도 되지 못한 채 최후를 마쳤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감옥에서 보내고 있잖아요. 이처럼 어둡고 슬픈 대통령문화가 정부수립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입니다."

라 교수는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과 달리, 미국 전직 대통령들은 임기 후에도 적극적으로 정치활동을 이어 가거나 꾸준히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면서 존경받고 있다고 했다.

"미국 대통령도서관과 대통령 유적지들을 답사하면서 전직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불명예스러운 흑역사를 겪고 있는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매우 컸습니다. 70여 년 민주주의 역사에 11명의 전직 대통령을 배출한 현시점에서 그들의 대통령문화를 벤치마킹하여 한국의 대통령문화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어요. 더 이상 한국의 대통령제도와 한국의 민주주의가 흔들려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라 교수가 미국 대통령도서관을 주의 깊게 보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우선 ‘도서관’이라는 명칭을 붙인 것이 대중 친화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념관’이라고 하면, 업적에 대해 긍정을 내포하기 때문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며 "하지만 도서관의 경우 자료를 모아 놓는다는 가치 중립적인 의미가 강하다. 동네 도서관에 가듯 부담 없이 사람들이 출입하고 해당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관람객 즉, 찾아오는 국민에게 일임한다는 점에서 적절한 명칭이 아닌가 한다"고 했다.

또 한가지는 도서관을 국민의 세금이 아닌 퇴임 대통령의 자력으로 건립한다는 점이다. "주로 대통령의 출생지나 모교에서 부지를 제공하고, 후원회원들이 돈을 모아 건립하는 형식이다. 다만, 큰 도서관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운영비가 들기 때문에 관리는 연방정부 기관인 NARA(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맡는다는 것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미국 대통령 문화기행 2만㎞ 대장정의 결실인 이 책은 라 교수가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13개 대통령도서관과 대통령 유적지를 찾아 꼼꼼히 자료를 조사하고 사진으로 기록했으며 또 도서관 담당자나 지역주민과 인터뷰하며 대통령들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국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그 뒷이야기뿐만 아니라, 대통령들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묘사했다.

국제정치학자인 그는 1979년 서울신문기자로 입사해 4년간 미국 워싱턴과 뉴욕 특파원으로 활약했다. 2000년부터 건양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로 부임해 학자의 길을 걸었다. 건양대 군사경찰대학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또 한국인도학회 회장과 미국 버몬트주 노르위치 대학 방문교수를 지냈다. 라 교수는 대학교수 20년을 마무리하면서 특파원 시절부터 모아온 취재자료를 보완해 이 책을 출간했다.

박현수 기자 phs200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