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대치동’은 서울 대치동에서 20여 년 동안 입시 전문가로 활동한 저자가 내부자의 관점으로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사교육 현장을 분석한 책이다. 사진은 대치동 학원가 풍경. 연합뉴스

■ 대치동│조장훈 지음│사계절

교육열 따라 강남 모여든 학부모, 부동산값 폭등하며 자식보다 먼저 신분상승
대원족·연어족·대전족·원정족… 대치동 밖과 구분 ‘차별과 배제의 카르텔’ 형성
“사교육 제재는 해결책 아냐… 계급 재생산 위한 노골적 욕망의 본질 직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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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은 ‘학벌’과 ‘부동산 시세차익’을 좇는 세속적 욕망의 집결지다. 이곳 사람들은 학벌을 통한 ‘소득 뻥튀기’,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으로 계급 상승을 꿈꾼다.”

‘대치동’은 내부자의 시선으로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를 움직이는 행위자의 욕망을 들여다본 인류학적 탐사기다. 20여 년 동안 대치동에서 논술강사와 학원장으로 일한 저자는 대학 입시를 둘러싼 피 튀는 경쟁과 부동산 차익을 향한 분주한 이동이 만나는 접점을 포착한다. 대치동이 상징하는 ‘교육열’은 강남 부동산 폭등의 신화와 결합해 ‘자식 사랑’과 ‘기적의 재테크’를 실천하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책은 “부유층이 계급상승의 가능성을 독점하는” 대치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불평등과 차별이 생산되는 구조를 분석한다.

1970~1980년대 정부 주도의 ‘명문고 강남 이전 프로젝트’와 ‘완전 학군제’ 시행으로 강남 지역에 대규모 인구가 몰려들었다. 자녀의 고교 진학을 앞둔 부모들은 ‘강남 거주’를 계층 이동이나 신분 세습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인식했다. 이에 따라 1981~1985년 서울의 고교생 증가율은 평균 1.2%에 그친 반면, 강남 8학군의 고교생은 57.5%나 늘었다. 넘치는 주택 수요에 강남 집값은 100배에서 많게는 190배까지 폭등했다. 부모들은 “자녀가 더 좋은 학벌을 갖고 더 나은 삶을 산다면 바랄 게 없다”는 심정으로 이주했지만, 재산 증식을 통해 자녀 이전에 자신의 신분과 계급을 먼저 ‘업그레이드’했다. 강남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자녀의 학벌’을 기대하는 것인지, ‘부동산 신화’를 꿈꾸는 것인지 구분하는 일은 무의미해졌다.

8학군 중에서도 은마아파트 등 수많은 대단지 주택이 밀집해 풍부한 ‘인구학적 조건’을 갖췄던 대치동은 1990년대 이후 수능 도입, 논술의 부상, 입학사정관제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이어지는 입시 제도의 격변 속에 사교육 중심지로 부상했다. 어떤 전형에도 빠르게 대응하며 유용한 전략을 제공하는 효율성과 전문성으로 경쟁 학군인 목동과 중계동을 압도했다. 전교조 해직 교사와 민주화 운동권 세력이 대거 강사로 유입된 것도 대치동 학원가의 성장에 한몫했다. ‘선전·선동’ 기술로 단련된 말솜씨에 인문사회적 지식까지 겸비한 이들의 강의 능력은 사교육 시장에 안성맞춤이었다. 실제로 이범(메가스터디)·황광우(플라톤아카데미)·장민성(유레카논술) 등 1990~2000년대를 주름잡은 ‘대치동 1타 강사’들은 상당수가 운동권 출신이었다.

책은 대치동에서 자녀를 키운 ‘소비자’를 유형별로 분석한다. ‘돼지 엄마’는 은밀한 사적 네트워크인 ‘카페 맘’들 사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학부모다. ‘새끼를 잘 치고 냄새를 잘 맡는’ 돼지처럼 기민한 정보 수집력으로 자신의 자녀를 비롯해 수많은 수강생을 학원에 연결해줬다. ‘능력’에 따라 많게는 100명 안팎의 학생을 몰고 다닌 이들은 억대 연봉을 받고 비밀리에 학원 영업실장으로 채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입시 제도가 복잡해지며 돼지 엄마의 영향력도 축소됐으나 이들 가운데 일부는 직접 학원을 차리거나 ‘입시 컨설턴트’로 변신했다. 이 밖에도 대치동 학원가엔 다양한 처지의 학부모들이 오가는데, 저자는 학원가 은어를 빌려 이들을 ‘대원족’ ‘연어족’ ‘대전족’ ‘원정족’으로 구분한다. 대원족은 전문직 출신의 대치동 원주민을, 연어족은 대치동을 떠났다 재건축 아파트로 ‘회귀’한 대원족의 자녀 세대를 지칭한다. 대전족은 대치동 전세 전입자를, 원정족은 대치동 바깥에 거주하며 주말마다 자녀를 학원으로 실어 나르는 이들을 뜻한다. 이처럼 여러 행위자가 얽힌 생태계는 ‘능력주의로 포장된 학벌주의’를 고착화하는 것을 넘어 수많은 불법과 탈법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차별과 배제의 카르텔’을 형성한 고소득층 자녀들은 ‘스펙 품앗이’로 학벌이라는 상징 자본을 손쉽게 획득했고, 학원 운영진과 컨설턴트들은 수익 창출에만 혈안이 돼 자기소개서 대필 등을 부추겼다. 이에 따라 대치동은 “‘평등한 교육’이라는 이상을 파괴하고, 그 바깥 사람들에겐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는” 동네가 됐다.

하지만 저자가 “(불평등을 초래하는) 사교육을 때려잡아야 교육 정책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계급 재생산을 위한 노골적 욕망의 본질을 직시해야 정책 실패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공교육과 사교육을 대립관계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사교육 시장의 체계적 시스템과 인력을 공교육으로 흡수해 ‘학교’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첫 출발이라는 얘기다. 이와 함께 저자는 정부가 ‘학종’의 폐해를 이유로 정시 확대를 밀어붙이는 것은 퇴행적 정책이라고 꼬집기도 한다. 교육이 학생들의 개성과 잠재력을 살리는 관문 역할을 하려면 입시 제도의 ‘다양화’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도 근본적 해법은 학벌주의를 타파하는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교육열과 학벌주의가 서로를 ‘담금질’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어떤 정책과 구상도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사회과학적 방법론으로 사교육 1번지를 해부한 기록을 흥미롭게 읽다가도 책장을 덮으면 바윗덩어리가 들어앉은 듯 마음이 무거워진다. 지난해 대치동을 떠나 콘텐츠 제작사로 일터를 옮긴 저자의 말처럼, 학벌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이 사라진 사회는 영영 “가닿을 수 없는 나라”인 것만 같아서. 416쪽, 1만80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