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희나리를 아는가? 나이가 지긋이 든 이들은 구창모의 노래 <희나리>를 떠올리며 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노래가 나오기 전, 아니 그 제목이 이상해서 뜻을 캐 보기 전에 이 단어의 뜻을 알았던 이들은 극히 드물 것이다. 사전에는 마르지 않은 장작이란 뜻으로 올라 있고 최일남의 소설에도 등장하지만 실제 사용되는 것을 귀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어쩌면 스러질 운명의 단어를 노래 하나가 살린 격이다.

아퀴를 아는가? 어휘력이 풍부한 이들은 매듭의 뜻을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다양한 표현을 즐기는 이들은 일을 끝맺음할 때 ‘아퀴를 짓는다’ 또는 ‘아퀴를 낸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사전이 아닌 현실에서 이 단어를 듣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콩 농사를 짓는 이들은 심심치 않게 쓰는 단어이기도 하다. 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지만 벌레 먹은 콩을 아퀴라고 부른다. 물론 반갑지 않은 결실이니 일일이 골라내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는 성가신 존재다.

희나리 또한 고추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단어이기도 하다. 병이 들어 빨갛게 여물지 않고 희끗희끗하게 변한 고추가 바로 희나리다. 사전에는 ‘희아리’로 올라 있는데 현실에서는 ‘시나리’로도 많이 쓰인다. 덜 마른 장작을 가리키는 말로는 들어본 기억이 없으나 밭일을 하거나 방언 조사를 가보면 심심찮게 마주친다.

희나리와 아퀴는 어디로 갔을까? 병든 고추나 벌레 먹은 콩을 자주 접할 수 있는 시절에는 흔히 쓰이는 말이었다. 그러나 농약으로 병충해를 예방하고, 추수하고 건조한 뒤 선별해 낸 고추와 콩만 접하는 시절이 되다 보니 쓰거나 들어볼 일이 없는 단어가 됐다. 누군가는 이런 말들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말보다 병든 고추와 벌레 먹은 콩이 먼저 사라진 결과다. 말은 우리의 삶과 함께 호흡하는 생명체이다 보니 희나리와 아퀴는 아스라이 마지막 불꽃만 남긴 채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