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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 ‘디지털 장의사’ 김호진 산타크루즈컴퍼니 대표

“영상물 등 삭제요청 年5000건
무심코 남긴 기록 부메랑으로
찾아오는 절반이 10代 청소년
性的 유포 협박이 피해의 80%
당당해지고 주변 도움 요청을”

글·사진 = 박현수 기자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어요. 범죄 빌미가 될 만한 사진은 안 찍는 게 상책입니다”

국내 1호 ‘디지털 장의사’ 김호진(53·사진) 산타크루즈컴퍼니 대표가 최근 신간 ‘디지털 장의사, 잊(히)고 싶은 기억을 지웁니다’를 출간했다. 지난 13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 대표는 “디지털 세상이 도래하면서 누구나 자유롭게 글과 사진을 생산하고 인터넷과 SNS를 통해 공유할 수 있게 됐지만, 무심코 남긴 기록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일이 늘고 있다”며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겐 잊힐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불법 영상물과 악성 댓글 등을 삭제해 달라며 산타크루즈컴퍼니에 의뢰해 오는 건수는 한 해 약 5000 건이다. 김 대표는 “의뢰자 중에는 기업과 연예인도 있지만, 10대 청소년이 3000여 명쯤 된다”며 “이중 성적 촬영물 유포 협박을 당한 경우가 무려 80%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어 “채팅 앱에 접속했다가 속옷 차림 사진을 보내는 바람에 약점이 잡혀 성적 촬영물 유포 협박을 받거나, SNS에 올린 사진이 성적 합성물로 악용돼 원조 교제를 한다는 누명을 쓰고 괴롭힘을 당한 아이도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온라인에서 기록물을 삭제한 사실을 알려주려고 전화를 했을 때,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이미 극단적 선택을 한 청소년도 많다”고 전했다.

어른이라고 다르지 않다고 한다. “결혼을 앞두고 전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나체 사진을 받은 여성이 있는가 하면, 합성 이미지로 피해를 보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피해자 절대다수는 가해자에게 끌려다니고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가해자에게 당당해져야 한다”며 “분노의 화살을 맞아야 하는 쪽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라고 역설했다. 피해자는 우선 마음을 추스르고, 경찰에 신고하거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중요하며 가해자의 요구에 응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대부분 요구를 받아줘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10대 청소년들에게는 디지털 기록 삭제 비용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부모가 피해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청소년들이 돈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사회봉사 20시간 확인증을 가져오라고 한다. 10대 전담 직원만 7명이나 된다. 그가 이 사업을 하면서 돈을 벌지 못하는 이유다.

디지털 성범죄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대표는 “이성 친구와 스킨십 하는 사진이나 자신의 신체가 노출된 사진은 절대로 남기면 안 된다”고 했다. “누구 휴대전화로든 아예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찍었다면 헤어질 때 휴대전화와 PC 등에 있는 사진을 완전히 지우고 확인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교체할 때 사용하던 휴대전화는 팔지 말고 폐기하거나 보관하라고 당부했다. 사용하던 휴대전화에 남겨진 사진이나 각종 정보가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록을 삭제해 달라는 의뢰를 모두 받아주는 것은 아니다. ‘n번방 사건’이 불거졌을 때 기록 삭제를 요청한 성착취 가해자가 수십 명에 달했고, 그중에는 삭제 대가로 1억 원을 주겠다고 했지만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회사 정체성과 설립 정신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이 책에서 ‘디지털 장의사’라는 생소한 일을 하게 된 배경을 털어놨다. 연극배우 출신으로 19년간 모델 캐스팅 회사를 운영하다, 2008년 자신이 발탁한 어린이 모델이 TV 광고에 출연하게 됐다. 하지만, 인터넷에 안티 카페가 생겨, 인신공격을 받고 신상 정보가 노출돼, 아이는 불안에 시달리며 정신과 치료를 받고 학교에도 못 가 힘들어하자, 악성 게시물을 삭제해 줘 어린이가 일상으로 회복해 큰 보람을 느낀 게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 책에는 그동안의 피해자 상담 사례와 디지털 성범죄에서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한 주의사항 등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