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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내 연애가 아니다

연애와 시. 괜찮은 조합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시집을 선물한다. 구닥다리 같지만 여전히 어울린다.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이건 의문이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기형도 ‘빈집’)라고 한 지가 벌써 언제인가. 그건 그렇고, 시 읽는 풍경 자체가 귀한 시대. 사랑 때문에 시를 찾는 사람이 아직 있기나 할까. “그럼요! 있어요, 있어. 꽤 많아요.” 시집 전문 서점을 운영하는 한 시인에게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할 시집 좀 추천해 주세요.” 수줍게(는 내 상상이다) 말하는 ‘인류’가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아, 지금 이 도시에 산다! 손에서 손으로, 시와 사랑을 전하며.

그들의 손에 들려 서점을 빠져나간 시들은 어떤 것들일까. 서점 지기에 따르면 ‘연애를 위한 시집’(조금씩 용도는 다르겠지만 큰 틀에서 이렇게 정리한다)을 고를 땐 제목이 가장 중요하다. ‘문단계 아이돌’로 불리는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가 요즘 잘나간다. 인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목만 봐도 애틋해 시를 잘 모르는 사람도 손이 ‘간다’. 서점 지기는 주의사항을 일러줬다. 시들이 꼭 시집 제목을 따라가는 건 아니라고. “읽어보면 결국 연애 실패담만 가득할 때도 있거든요.”

한때는 유진목 시인의 ‘연애의 책’(삼인)도 자주 권했다. 연애소설 여러 편을 읽는 듯한 시집이다. 사랑이 ‘두 사람의 사건’임을 깨닫게 하는, 내밀한 풍경들이 담겼다. 무엇보다 이렇게 시작하는 시가 있으니. “매일같이 당신을 중얼거립니다 나와 당신이 하나의 문장이었으면 나는 당신과 하나의 문장에서 살고 싶습니다”(‘당신, 이라는 문장’). 이쯤되면 낭만도 치사량이다.

서점 지기는 내게 민구 시인의 ‘당신이 오려면 여름이 필요해’(아침달)를 추천했다. 이미 가을인데, 내년까지 ‘당신’을 기다리라는 건가. 여름을 찬란한 인생의 때라 생각하며 내 맘대로 제목을 바꿔봤다. ‘여름이 오려면 당신이 필요해’. 괜히 혼자 흡족하다. 찾아보니 “웃기고도 쓸쓸한” 시란다. 그래, 사랑이 본래 웃기고 쓸쓸하지. 인생엔 결국 웃기고 쓸쓸한 게 둘 다 필요하지.

시집을 사 간 그 ‘인류’는 어떻게 됐을까. 서점 지기는 연애 시를 골라 줄 때마다 “잘되면 꼭 알려주세요”라고 한다. 아직 소식을 전한 이는 단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연애하느라 바빠서 그럴 거예요. 사랑을 잃어야 온다니까요).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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