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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조각 / 윤강미 지음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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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도 일종의 방공호가 있어 지금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가둘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확진자의 숫자는 여전하고 이번 한가위에도 거리두기를 잘 지켜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이런 날, 윤강미 그림책 ‘달빛 조각’은 잠시 평온한 위안이 된다. 작가는 맑은 숨쉬기의 경험을 안겨준다. 어디선가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풀냄새가 실려 올 것 같다.

책은 청풍호반이 떠오르는, 항공 촬영 시점의 후련한 초록 그림으로 시작하는데 “엄마와 이모가 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오자고 했습니다”라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다. 우리 여행 그림책은 습관처럼 아빠와 엄마, 두 아이를 가족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린이는 다양한 조합의 여행을 기다린다. 할아버지와 떠난 여행을 다룬 이억배의 ‘봄이의 여행’이나 1인 가구 여성들의 여행담인 조혜란의 ‘빨강이들’은 반가운 시도였다. ‘달빛 조각’도 새로운 조합의 가족여행을 보여준다.

두 어린이는 여행 사진을 검색하며 짐을 꾸린다. 방바닥에 놓인 윤 작가의 첫 그림책 ‘나무가 자라는 빌딩’에는 고층건물에서 나무가 자라는 상상이 나온다. 이번 책에서 작가는 진짜 숲으로 들어간다. 여행은 간소하고 편안하다. 엄마와 이모가 정담을 나누는 장면을 보면 휴양림 풍경마다 등장하는 큰 아이스박스, 숯불구이 철망은 보이지 않는다. 진짜 휴식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엄마는 두런두런 대화 중에 어떤 것을 언급하며 “아직 있을까?”라고 말하고 가족은 ‘그것’을 보기 위해서 저녁 산책을 나선다.

작가는 숲에 가면 숲의 일원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인공조명을 최소화한 덕분에 달빛 아래에선 동물들이 사람보다 밝게 빛난다. 별은 또렷해지고 네 사람의 걸음은 동물들을 방해할세라 조심스러워진다. 주조색으로 선택한 청색 기미가 있는 녹색(deep bluish green)은 깊은 밤 숲의 신비를 보여준다. 탁월한 결정이다. 그리고 네 사람은 드디어 ‘그것’을 만난다. 이어서 그리운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달빛처럼, ‘그것’이 환한 빛처럼 등장한다. 이 그림책은 육중한 의식이나 격식에 얽매이지 않아도 가족이 정을 나눌 수 있고 그 가족은 반드시 부계여야 할 필요가 없으며 보름달 소원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을 위해서도 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한가위 그림책이자, 지속가능한(sustainable) 아름다운 여행 그림책이다.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